오소리(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사랑이 이겼다!”
지난 2월 21일,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나와 내 남편 성욱이 원고로 참여한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 항소심에서, 우리는 승리했다. 한국 사법부에서 동성 부부의 권리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라는 점에서 내·외신 가리지 않고 많은 관심을 받았다. 판결 직후 3일 동안 끊임없이 인터뷰가 이어졌고 슬슬 지쳐갈 무렵, 우리 부부는 계속해서 쏟아지던 인터뷰 요청은 잠시 뒤로 한 채, 호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권재단사람의 지원으로 시드니월드프라이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그게 마침 판결 3일 뒤부터 시작하는 일정이었다. 어쩌다 보니 승소 기념 여행이 된, 여러모로 의미 있었던 시드니월드프라이드 탐방기를 써내려 간다.
온 세상이 무지개로 물들을 때면
10시간이 넘는 긴 비행 끝에 우리 부부는 호주 시드니 공항에 발을 딛었다.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준 건 무지개로 칠해진 시드니 영문 코드(SYD) 간판이었다. 간판을 시작으로 사방팔방 눈길이 가 닿는 곳마다 온통 무지개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주류 가판대부터 시작해서 온갖 상업 광고도 시드니월드프라이드를 기념하는 광고였고, 공항 곳곳의 공간 장식 또한 무지개로 칠해져 있었다. 긴 비행의 지침도 잠시, 무지개의 황홀함에 취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댔다.
무지갯빛 세상은 공항에서 시작해 시드니 도심까지 이어졌다. 도로 이정표마다 레인보우 플래그가 박혀 있는 걸 시작으로, 식당, 호텔, 약국, 마트 등 너나할 것 없이 무지개를 내걸고 시드니월드프라이드를 기념하고 있었고, 버스와 지하철에서는 자긍심을 가지고 타라(Ride with Pride)는 광고가 계속 눈에 띄었다. 무지개 에스코트를 받으며 도착한 숙소 역시, 이 날 저녁부터 진행될 예정인 마디그라 퍼레이드를 기념하며 사탕을 나누어주었다. 우리는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마음에 무지개를 한가득 품고 퍼레이드가 열리는 옥스포드 스트리트로 향했다.
마디그라 퍼레이드
마디그라 퍼레이드는 시드니에서 매년 열리는 마디그라 축제의 하이라이트 이벤트로, 한국의 퀴어문화축제와 퀴어퍼레이드를 생각하면 된다. 마디그라 퍼레이드는 시드니 중심가를 가로지르며 약 2km 구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한국의 퍼레이드와는 다르게 행진에는 사전 신청한 사람들만 참여가 가능했고, 사전 신청은 단체 혹은 팀 단위로만 가능해서 다른 사람들은 관람만 할 수 있었다. 우리 역시 수많은 관람객 중의 하나로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행진 경로에는 퍼레이드를 구경 나온 사람들도 가득했다. 우리는 더 나은 관람 스팟을 찾기 위해 행진 경로를 따라 계속해서 걸었는데, 걷다보니 어느새 행진이 끝나는 지점까지 도달해버려서 결국 제일 끝 부분에서 퍼레이드를 관람하게 됐는데(결국 좋은 스팟은 못 구했다는 뜻이다…), 경로의 처음부터 끝까지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 있었다. 관람하는 사람들은 행진팀이 지나갈 때마다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내주었다. 한국에서는 간혹 도심의 무관심 속에 우리끼리만 행진하는 외로운 경험을 하곤 하는데(때론 혐오선동세력만이 반겨준다거나…), 한국에서도 행진 경로를 따라 사람들이 모여 행진팀을 응원해주면 더욱 신나게 행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행진에는 200개가 넘는 팀이 참여했는데, 정체성별, 국가별은 기본이고, 연령별, 의제별(난민, 빈민, 평화, 의료, HIV 등), 직군별로 팀을 구성하여 각 팀마다 가지고 있는 의제에 대한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인상깊었다. 정말 수많은 인파에게 다양한 메시지가 전달된다는 점에서 퍼레이드가 가지는 의미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불과 2km의 구간이었지만, 200개팀이 다같이 행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행진을 하다 보니 무려 4시간이 소요됐다. 이 날은 우리가 시드니에 도착한 당일 저녁이었다. 긴 비행+관람 대기 시간에 지친 우리는 행진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숙소로 먼저 돌아가게 됐다. 숙소에서 그냥 생각없이 TV를 켰는데, TV에 퍼레이드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단순 뉴스 이슈거리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호주의 국영 방송에서 마디그라 퍼레이드를 생중계하고 있었다. 덕분에 TV로라도 퍼레이드를 끝까지 관람할 수 있었다.(사실 직접 보는 것보다 더 잘 볼 수 있었다…) 혐오하는 사람 하나 없이, 온 도시가 하나되어 퍼레이드를 즐기는 모습, 곧 한국에서도 그런 날이 오리라 상상하며 시드니에서의 첫날밤을 마무리했다.
무지개 이면의 그늘
월드프라이드 기간 동안에는 퍼레이드뿐만 아니라, 홈페이지 이벤트 페이지에서 스크롤을 내려도 내려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이벤트들이 열렸는데, 우리는 그 중 'Positive Musings: Reflections on HIV in Modern Australia' 라는 에이즈 토크쇼에 참여했다. 토크쇼에는 HIV감염인 당사자, 성노동자, 작가, 감독, 보건의료계 종사자 등이 패널로 참여하여 호주의 HIV/AIDS 인권 현황, 이슈, 문화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패널들은 입을 모아 호주에서 에이즈에 대한 낙인과 공포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호주의 성소수자들은 쉽게 커밍아웃 할 수 있지만 HIV 감염인들은 쉽게 커밍아웃 할 수 없다고 했다. 무지갯빛 세상인 시드니에서 HIV 감염인의 인권을 상징하는 레드리본은 찾아볼 수 없어 의아해하던 찰나, 의문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패널들은 사람들이 프렙(PrEP, HIV 노출 전 예방법)을 하더라도 HIV감염인과의 성관계는 꺼린다거나, 과거 호주의 주류 미디어에서 에이즈에 대한 낙인과 공포를 부추겼던 것이 잔존해 있기도 한다고 전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패널 중 한 명이 "사람들이 무지개를 지지하는 것만큼 HIV/AIDS인권을 지지하느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얘기한 부분이었다.
성소수자 친화적인 도시의 이면을 볼 수 있었던 세션이었다. 누군가를 향한 낙인이 정당화될 수 있는 사회는 모두에게 위험한 사회가 될 수 있다. 패널 중 한 명의 말처럼 ‘침묵을 경계하며 계속해서 HIV/AIDS에 대한 이야기를 수면 위로 꺼내는 게 중요’ 하다. 이는 비단 호주의 상황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라 한국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다. 아무리 성소수자 친화적으로 보일지라도 그 이면에는 그늘이 존재할 수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를 경계하며 침묵하지 말고 소리쳐야 한다.
“로고만 무지개로 바꾼다고 그게 퀴어프렌들리니?”
월드프라이드를 맞이해서 열리는 이벤트 중에는 3일 간에 걸쳐 열리는 인권컨퍼런스도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성소수자 인권포럼이랄까? 메인 세션이 있기도 하고 동시간대에 여러 개의 세션이 개별적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매우 매우 비싼 참가비. 3일 동안 전참하기 위해서는 몇 십만원의 참가비가 필요했고 그건 너무나 큰 부담이었기에, 우리는 이튿날 메인 세션만 참여하는 걸로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다. 컨퍼런스는 부둣가인 달링 하버에 위치한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열렸는데, 어마어마한 규모의 위용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건물을 딱 보는 순간 느꼈다. 아, 이래서 참가비가 비싸구나.
우리가 참여한 이튿날에는 그 유명한, 성소수자이고 HIV감염인이자 남아공 최고법원 재판관 출신인 에드윈 카메론의 기조연설이 진행됐다. 에드윈 카메론은 기조연설을 통해 정체성별 구분을 넘어 함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견 당연한 소리이지만, 몸소 복합적 차별을 견디고 온갖 풍파를 헤치며 지금에 도달한 그의 말이었기에 울림이 있었던 것 같다.
에드윈 카메론의 기조연설에 이어 패널 토크 형식의 메인 세션이 진행되었는데, 세션의 제목은 'Beyond pinkwashing'이었다. 평소에도 관심있던 주제였기에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세션을 귀기울여 들었다. 패널로는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딜로이트 등 전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대형로펌, 초국적기업들의 임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양복쟁이들 가운데서 당당하게 ‘We are union – PRIDE’가 가슴팍에 크게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등장한 페미니스트 레즈비언 노동자이자 노동조합 활동가인 Wilhelmina Stracke였다. 다른 패널들이 기업들의 핑크워싱을 애써 포장하려 할 때, 그녀는 기업들의 핑크워싱을 경계하며 끊임없이 질문들을 던져 댔다. 이를 테면, 기업들이 로고만 무지개로 바꿀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들의 스토리를 담아야한다고 조언하기도 하고, 해당 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지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시드니에서는 기업 로고를 무지개로 바꾸면서 성소수자 친화적인 것을 드러내는데, 시골지역이나 인권이 척박한 다른 국가에서는 왜 안그러는가 혹은 왜 못하는가? 변화를 바라는 게 진짜 맞는가? 혹은 변화가 이미 어느정도 이뤄지고 있는 곳에서 그저 대세를 따를 뿐인가?” 라고 일갈할 때는 나를 비롯한 회의에 참여한 모든 활동가들이 함께 통쾌해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 시작했다. 이케아는 퀴어문화축제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퀴어프렌들리한 곳으로 소문나 있지만, 이케아코리아의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한국법인 노동자도 동등하게 대우하라”며 이케아코리아 노동자들이 쟁의행위에 돌입한 경우도 있었고, 삼성, 현대 등 대기업들이 해외에서는 성소수자들을 겨냥해서 무지개로 도배된 광고를 해댈 때 한국에서는 성소수자의 '성'자도 꺼내지 않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Wilhelmina Stracke가 이어서 한 말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상은 그냥 변해온 것이 아니고 우리가 투쟁을 통해서 바꿔온 것’이고 ‘여전히 노동자들의 현실은 매우 열악’하다. 기업들의 호의를 마냥 달가워할 것이 아니라 핑크워싱인지 따져가며 경계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버브릿지의 중심에서 한국의 혼인평등을 외치다!
우리가 시드니에 있는 동안 퍼레이드가 두 번 열렸는데, 한 번은 앞서 소개한 마디그라 퍼레이드였고, 나머지 하나는 바로 ‘월드프라이드 마치’였다. 월드프라이드는 1980년대부터 미국의 지역 프라이드 행사의 연합체로 시작했던 ‘인터프라이드’라는 단체에서 라이센싱한 상표로서 2-3년에 한 번씩 한 도시에 월드프라이드라는 명칭을 수여한다고 한다. 2023년에 그 명칭을 수여 받은 도시가 시드니인 것이고, 그 월드프라이드의 메인이벤트가 바로 월드프라이드 마치이다.
이번 시드니 월드프라이드마치는 온라인을 통해 사전 참가 신청을 받고 선정된 사람들에게 며칠에 걸쳐 사전에 입장티켓(팔찌)을 나눠준 후 당일날 입구에서 티켓을 보여주고 참가하는 시스템이었다. 우리는 1차 신청 때는 신청기간을 놓쳐서 신청을 못하고 대기를 걸어 놨는데, 추첨을 통해 정말 운이 좋게도 티켓을 얻을 수 있었다. '월드'프라이드니까 국가별로 인원을 배분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보았다. (실제로 행진 내내 우리가 조우한 한국인은 전무했다.)
시작 지점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는데, 개찰구에서 승강장 직원에게 팔찌를 보여주면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었고, 프라이드 마치는 노스시드니스테이션에서 시작해 하버브릿지를 건너 시드니 도심부인 하이드공원에 도착하는 경로였는데, 시드니의 북과 남을 관통하는 핵심도로를 무려 8시간 동안 전면통제하고 진행됐다. 정말 도시 시스템이 월드프라이드에 맞춰져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4km의 구간 중 가장 좋았던 구간은 역시 하버브릿지를 건널 때였는데, 시드니의 가장 유명한 명소 중 하나인 하버브릿지의 8차선 도로를 점거하고 걸어서 지나갈 수 있다니, 이건 정말 다시 없을 경험이었다!
우린 "Marriage for all, love will win in Korea 한국의 혼인평등, 사랑이 이긴다" 현수막을 들고 행진했다. 우리 주변에 현수막을 든 건 우리가 유일해서 그런지 호주 언론사에서 취재도 해가는 등 매우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제일 기억에 남았던 건, 어떤 꽤나 노년으로 보이는 서양 할머니커플이 와서 우리에게 행운을 빌어주고 간 것이었다. 아마 동성혼이 가능한 나라에서 살고 계신 거겠지? 우리를 보면서 동성혼이 가능하기 이전 시대를 살아가던 기억으로, 우리를 응원해주신 건 아닐까 짐작해보며 뭉클한 마음으로 행진을 마칠 수 있었다.
다시 집으로
프라이드마치를 끝으로 우리의 9박 10일 간의 호주 시드니 여행은 막을 내렸다. 즐겁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때론 반면교사 삼을 만한 것을 보고 배우기도 한 유익한 시간이었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못내 아쉬웠지만 어쩌랴. 나의 집은 한국에 있는 것을.
무지개로 둘러싸인 시드니에 있다보니 다시 돌아온 한국은 무채색에 가까웠다. 풍경 뿐만이 아니라 시드니와는 정반대의 추운 날씨도, 성소수자 인권 지수도 그러했다. 집으로 향하는 공항철도 안, 우리는 철도 내 스크린 자막뉴스를 통해 건보공단이 항소심 결과에 불복하고 대법원 상고를 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시드니 여행의 시작은 승리였는데, 돌아오자마자 다시 싸움의 시작이라니.
하지만 절대 좌절은 하지 않는다. 월드프라이드 마치에서 우리에게 굿럭을 외쳐 준 할머니커플처럼, 우리도 언젠가 동성혼이 되지 않던 시대를 과거로만 기억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라며, 우리는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할 뿐이다. 그렇게 오늘도 열심히 투쟁의 의지를 다져본다. #LoveWins!
※ 이 글은 인권재단사람 홈페이지에도 중복게재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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