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평과(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23년 2월, 평소보다는 한가한 날이었다. 텔레그램의 각종 채널을 스크롤 하다가 행성인 채널을 통해 행성인에서 “행성인 아카데미”라는 것을 알게 됐다. 때마침 그 당시 내가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서 제대로 이슈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여태껏 집중해온 무성애 관련 이슈에만 관심을 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데, 그걸 고치고 싶었던 것도 같다. 이런 상황이 성소수자 이슈를 더 잘 이해하고 싶은 욕심이 되어 행성인 아카데미를 신청했다.
3월 초, 행성인 아카데미의 개강을 앞두고 행성인에서 발송한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또렷이 기억난다.
‘아, 맞다!’
신청하고도 잊고 있다가 문자메시지를 받고 신청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하마터면 못 갈뻔했다. 그 메시지를 받고 나서 일정 앱에 토요일마다 등록을 해뒀다.
3월 11일 토요일, 나와 우리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고, 우리 운동이 가진 역사를 살펴봤다. 그 3월 11일부터 4월 8일에 이르기까지, 토요일마다 유수의 강사를 통해 강의를 듣고 관련된 활동을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첫날 이후로 트랜스젠더, HIV/AIDS, 군형법 제92조의6, 노동권, 혼인평등 등이 가진 각각의 이슈를 배웠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각각의 이슈에 대해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게 됐다.
각 이슈와 관련해 각별히 인상 깊었던 내용을 몇 가지 꼽아보자면 트랜스젠더에게도 혼인평등이 필요한 이유라든지, 노동현장에서 성소수자의 노동권 보장과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노동권 침해가 갖는 관계와 모순이라든지, 성소수자 이슈와 관련해 그 발언을 하는 사람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등이 있었다.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일은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기념해 있었던 4월 1일 오픈마이크 발언을 다 함께 들으러 갔던 일이었다. 아카데미 활동을 마치고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한 후 경의선 숲길을 따라 걸어 오픈마이크 장소에 갔다. 좋아할 수만은 없게 피어 있던 아름다운 꽃잎과 날씨나, 잘 보이지 않아 어렵게 쪼그려 앉아 가며 얼굴을 본 고양이가 기억에 깊이 남았다. 무대 좌측으로 보이던,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트랜스젠더 자긍심 깃발 색상으로 1층과 2층이 도색된 건물과 무대를 바라보고 있던 전광판도 기억에 깊이 남았다.
4월 15일,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있어 캠페인이란 무엇인지 배웠고 이날로부터 우리의 또 다른 운동이 시작됐다. 캠페인을 기획하기 위해 우리의 관심사를 모았고, 모은 관심사를 기반으로 우리의 목표를 정했다. 사실 우리 조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해서 조금은 추상적인 목표를 세웠다. 4월 22일, 워크샵 날 우리가 가졌던 추상적인 목표를 구체화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 세부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세웠다. 워크샵 당일로부터 연말에 이르기까지 오래 걸리는 계획이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가장 즐거웠던 것은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듣는 일이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진행된 만큼 우리에겐 많은 관심사와 이야기가 있었다. 또 매주 새로운 주제가 주어졌다. 내가 워낙 말하는 걸 좋아하고 말도 많은 사람이라 충분히 들었는지는 의문이 남지만, 조별로 각각 나눈 대화도 그렇고 각 조에서 나눈 대화를 정리하여 다 함께 나눈 것도 모두 좋았다.
즐거운 시간들이 다 지나가고 워크샵도 거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다. 바로 수료식이었다. 나는 한 주도 빠지지 않은 덕분에 개근상을 겸하는 특별한 수료증을 받았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으니 다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고, 이후에는 더 나누지 못한 대화도 나눴다.
수료증을 받기까지 매주 열심히 준비하셨다는 사실이 너무 잘 느껴졌다. 수료증은 멘토들이 아닌 일반 참여자들만 받았지만 멘토들에게도 수료증 비슷한 것이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면 감사장 같은 것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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