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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

[회원에세이] 혼인평등 활동가의 공과 사를 넘나드는 두 번의 결혼식

by 행성인 2023. 8. 22.

호림(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지난 2023년 7월 24일 월요일, 11년째 함께 살고 있는 애인과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것도 두 번이나. 

 

애초의 아이디어는 결혼식이 아니라 해외 혼인신고였다. 동성 결혼이 가능하고, 외국인 사이의 혼인신고도 가능한 지역으로 여름 휴가를 가서 혼인신고를 하고 오는 것. 소셜미디어로 해외 혼인신고 후기를 공유하는 한국 동성 커플들을 보며, L연수시절에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던 차였다. 한국에서의 결혼식은 하객 규모가 원만하게 합의되지 않아 당장 불가능하고(각종 행사와 잔치 애호가인 나와 북적이는 행사는 싫고 내가 주인공인 행사는 더 싫다는 애인이 원하는 하객 규모는 자릿수부터 다르다.)한국에서의 법률혼은 일단 투쟁으로 만들어낸 후에 비로소 할 수 있는 현실에서 떠올린 소소한 커플 이벤트였다. 마침 함께 산 지도 10년이 넘어가는 시점이라 우리의 관계를 기념하는 무언가를 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는 그래도 이왕이면…’으로 시작되는 사고의 흐름과 우리의 비공식 웨딩플래너애인 동생인 SH언니의 추진력을 만나 소소하지만 거창한 두 번의 결혼식이 되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의미 있는 결혼식을

 

결혼식을 두 번이나 하게 된 건 우리에게 그래도 이왕이면 의미 있는 결혼식을’ 선물해주려던 SH언니의 불꽃 같은 추진력 덕이었다. 하와이에서 혼인신고를 하려면 주 정부의 허가를 받은 주례자(marriage officiant)가 예식을 진행해야 한다. 하와이는 결혼식과 신혼여행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라 현지의 수많은 웨딩 업체를 통해 쉽게 주례를 구할 수도 있다. SH언니는 그래도 이왕이면 의미 있는 사람이 우리의 주례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발견한 사람은 일본계 미국인이자 오픈리 레즈비언인 사브리나 맥케나(Sabrina McKenna) 하와이 주 대법관님이었고, 주저 없는 추진력으로 대법관님에게 연락을 한다. 심지어 보이스메일로. 비서로부터 최근에는 결혼식 주례를 하지 않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식을 한 달 정도 남겨둔 시점, 어떤 인연도 없는 한국 레즈비언 커플의 갑작스런 주례 요청을 대법관님이 수락하실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당연하다는 듯 거절을 예상한 우리는 대법관님의 회신이 오기 전 웨딩 업체를 통해 결혼식을 예약했다. 

 

그런데, 연락이 왔다. 후기를 쓰는 지금도 여전히 놀라운 커다란 환대에, 소식을 들은 아침에는 눈물 바람을 했다. (지금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 큰 환대에는 한국의 혼인평등 운동과 활동가에 대한 응원이 담겨있었으리라, 조금 짐작할 뿐이다.) 마침 그날은 7월 1일, 올해의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있었고 한창 모두의 결혼 부스와 차량행진 짐을 챙기러 나설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먼 곳에서 보내 준 축하와 환대 덕에 무더위 인파 속에서 종일 뛰어다니면서도 마음이 든든했던 기억이다. 

 

결혼식 후 대법관님 사무실에서 잠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

 

결국 이런 사정으로 결혼식은 두 번이 되었다. 7월 24일 오전 10시 하와이 주 대법원에서의 결혼식과 저녁 6시 해변에서의 결혼식. 우리의 결혼식과 허니문 여정에는 미국에 살고 있는 SH언니와 남편 A가 함께하기로 했고, 해변의 결혼식에는 마침 같은 기간 열리는 머신러닝 학회(!) 참여 차 하와이에 있게 된 친구 Y도 참석해 부케를 받기로 했다(Y는 게이 남성이고, 내가 공동의 지인인 레즈비언 M의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을 때, 그 자리엔 Y도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케의 인연)하와이에 함께 하지 못하는 가족과 친구, 동료들이 결혼식을 볼 수 있도록 줌으로 결혼식을 중계하기로 했다.

 

소소한 결혼식이라도 준비할 일의 가짓수가 극적으로 줄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결혼식 준비 기간은 모두의 결혼 캠페인 런칭과 겹쳤고, 나는 모두의 결혼을 위해 일하느라, 정작 내 결혼식 준비에는 제대로 신경을 못 쓰는 아이러니한 시간을 보냈다. 결혼식 장소와 식사, 웨딩링, 드레스와 헤어 메이크업, 사진과 영상 촬영 등 결혼식의 필수 요소(!) 대부분은 애인과 SH언니가 알아보고 준비해 주었다. 

 

 

우당탕탕! 서프라이즈!

 

연애 15년, 동거 10년이 넘는 애인과 나의 삶은 장르로 따지면 시트콤에 가깝다. 특히, 함께 하는 여행에서 크고 작은 소동이 많았는데, 튀김 꼬치가 발에 박혀 구급차를 타거나(2011년 대만), 바리바리 캠핑짐을 싸 들고 갔지만 운전면허증을 놓고 와서 캠핑을 못 하거나(2018년 일본하는 일들이었다. 결혼식 당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혼식 전에 필요한 결혼허가서(marriage license)를 발급받으러 가는 길에 둘 다(!) 여권을 챙기지 않은 것이다. 관공서 앞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다시 호텔로 여권을 챙기러 돌아가야만 했고, 그렇게 우리는 무려 우리가 주인공인 결혼식에 30분 넘게 지각하는 기염을 토한다. 

 

허둥지둥 도착한 대법원 법정엔 15명 남짓의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법관님은 주례를 수락하며 결혼식에 하객을 초대해도 되는지를 물어보셨고, 우린 감사한 마음으로 제안에 응했다. 사람이 있으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한국에서 온 처음보는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식을 축하해주러 온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니 눈물이 났다. 낯선 사람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기꺼이 월요일 오전부터 시간을 낸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한 것이다. 대법관님이 여기 모인 사람들을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감동을 넘어 충격에 빠졌다. 대법관님은 우리에게 정말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을 선물해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대법관님이 초대한 하객 중에는 하와이 주 대법원장(Mark Recktenwald)과 부지사(Sylvia Luke), 두 명의 주 하원의원(Adrian Tam & Amy Perruso) 있었다. 우리는 졸지에 하와이의 삼부요인(!)들 앞에서 결혼식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시트콤적 에피소드를 또 한 번 적립하며 이 모든 사람들을 30분 넘게 기다리게 했다.)

 

대법정에서 결혼식 기념사진. 아직 직장에 커밍아웃 하지 않은 애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애인의 얼굴을 가리고, 애인 가족들이 나온 부분을 잘랐다.

 

 

저는 하와이 주 정부가 부여한 권한에 따라 지금부터 두 사람이 혼인하였음을 선언하고, 이제 여러분을 아내와 아내로 공표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대법정에 모인 사람들과 한국 시간 새벽 5시에 줌으로 함께 한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첫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 선생님의 성혼선언까지 20분 남짓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얼떨떨함과 허둥지둥의 연속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들의 다정한 축하였다. 대법원장님과 부지사님이 환대와 축하의 의미로 걸어 주신 레이와 하원의원 두 분이 선물해주신 거북이 무늬의 젓가락 한 쌍, 한국계인 부지사님과 대법원 인턴 분들에게 한국말로 축하를 받고 뭉클했던 일. 

 

 

공과 사를 넘나드는

 

우리가 첫 번째 결혼식을 올린 법정은 1990년대 초 미국에서 처음으로 '동성 간의 혼인을 배제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판결을 내렸던 혼인평등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상징적인 공간에서 결혼식을 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냥 활동가의 운명일까, 마침 우리 결혼식 다음날 하와이에서 일본의 혼인평등운동 단체인 Marriage for All Japan(‘마리포재팬’)의 대표인 마키코 테라하라 변호사의 강연이 있었다. 강연 소식을 알려주신 대법관님의 제안으로 우리는 강연에도 함께 가게 되었다. 

 

마리포재팬  마키코 변호사님의 강연장에서

 

가까운 옆 나라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혼인평등운동의 이야기를 결혼식을 위해 방문한 하와이에서 듣게 되다니 묘한 기분이었다. 마리포재팬의 여러 동료들을 만나왔지만, 마키코 변호사님과는 초면이라 하와이에서 처음 만난 것을 신기해 하며 인사를 나눴다. 한국에서 온 신혼부부이자 혼인평등활동가로 소개받아 축하를 받기도 하고, 강연 후 질의응답 시간에 짧게 한국의 운동 현황을 이야기 할 기회도 있었다. 허니무너에서 활동가로 모드 전환을 하고, 사람들과 명함을 나누며 대화를 하다 보니 이것은 신혼여행인가 해외 컨퍼런스인가 싶었지만, 일본에서 전국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동성혼 소송의 현황을 들으며 곧 한국에서도 진행 할 소송 운동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던 의미 있는 기회였다. 

 

 

해질녘 해변에서

 

해질녘 하와이 해변에서의 결혼식은 두번째 결혼식이라(!), 조금 편한 마음이었다. 주례 선생님의 진행에 따라 두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보며 우리가 함께 보내온 시간들을 떠올려 볼 수 있었고, 또 함께 할 미래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우리를 둘러싼 풍경 속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우리의 로망이었던 해질녘 해변에서의 결혼식

 

한국에서 아직 법적인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는 혼인신고인데, 가족과 친구, 동료들을 초대할 수도 없는 결혼식인데, 심지어 함께 산지 10년이 넘은 후에 하는 새삼스러운 결혼식인데, 우리에게 이 결혼식은 어떤 의미일까. 결혼식을 준비하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이 오갔다. 결혼식 이후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의미를 정확히 말하기 어렵고, 또 굳이 의미를 찾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우리의 이번 결혼식의 의미는 여전히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한가지, 결혼식이라는 경험을 통해 수많은 축하를 받으며 한가지 다짐하게 된 것은 있다. 나와 주변의 기념할 일, 기쁨을 나누고 축하를 주고받아야 하는 순간, 함께 슬퍼하고 위로를 나눠야 하는 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자는 것이다. 삶에 매듭이 되는 중요한 순간에 나누는 마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순간들이 우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각자의 삶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이번에 받은 수많은 축하와 환대를 통해 깊이 체감하게 되었다. 

 

언제 우리가 한국에서의 결혼식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한국에서 우리의 관계를 서로의 법적인 배우자로 만들기 위해서 앞으로 할 일도 많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올 여름 결혼식을 통해 가족과 친구, 동료, 그리고 처음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환대와 축하를 기억하며 지난 10년간 그래왔듯이 시트콤 같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종종 되돌아볼 이 시간은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결국, 사랑이 이길 때까지. 

 

 

덧. 우리가 하와이에서 돌아 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우이섬에서 기후위기로 인한 대규모 산불이 발생해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여전히 수백명이 실종 상태다. 하와이에서 받은 환대를 기억하며, 기후 재난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명복을, 남은 이들과 공동체의 회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