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동(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어제는 아이가 태어난 지 2년 7개월이 되어 키와 몸무게를 쟀습니다. 어느새 우리 품에 안겨 생후 30개월을 맞이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는 짓이나 말로 표현하는 것들이 한 살 때까지는 매달, 그리고 두 살부터는 6개월 단위로 큰 변화를 보였던 것 같아요.
요즘에 이 녀석이 돈이란 것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마트에서 과자를 카트에 담으면 계산도 하기 전에 바로 먹겠다고 떼를 썼습니다. 그러면 저는 지갑을 보여주며 돈을 내야 먹을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막무가내 이지요. 그런데 이게 효과가 있었을까, 지난번 마트에서 계산 전에 먹겠다고 하여 돈을 내야 먹을 수 있다고 알려준 뒤 시험 삼아 지폐를 주었더니 계산대에서 순서를 기다리다가 지폐를 건네 주더라고요. 그리고 돈을 내는 훈련을 하기 위해 멤버십 카드도 손에 쥐어주면서 계산하는 이모에게 주라고 하면 아주 신나라 입니다.
우리 집에는 동전을 모아 놓는 뚝배기 그릇이 있습니다. 고향 냄새가 물씬 풍기고 생김새도 예뻐서 장식도 할 겸 사용하고 있습니다. 신의 손을 가진 이 녀석이 깨뜨릴 수 있어 높은 곳에 놓았지요. 이 녀석은 아빠가 동전 꺼내는 것을 보고 머리에 기억해 놓았습니다. 어느 날인가 아빠 보고 안아달라고 하더니 뚝배기 뚜껑을 집어 들고 동전을 한웅큼 잡았습니다. 앞으로 과자 사먹을테니 돈 내놓으라고 손을 많이 벌릴 겁니다.
동성부모의 육아에 관한 학문적 연구
저의 성소수자 연구는 석사과정 중 문헌고찰 연구로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참고문헌을 리뷰하던 중 퀴어들은 성적지향으로 인한 혐오와 차별로 인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정신건강을 전공하는 저는 성소수자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을 탐색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석사 논문으로 성정체성과 정신건강에 관한 주제로 써보고 싶다고 지도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지도교수님이나 논문 심사위원들 가운데 동성애혐오나 편견을 갖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저의 연구 결과를 비하하거나 논문 통과를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었죠. 다행히도 퀴어 커뮤니티 동지들이 참여해주셔서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들도 논문을 높이 평가해 주셨습니다. 이 논문은 제 생애에 가장 뿌듯한 논문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아이를 입양하기 전에 저는 주로 성소수자의 건강, 혐오와 차별, 동성결혼 등의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더불어서 입양을 통해 아이를 키우면서 퀴어부모들의 자녀 양육에 관한 글들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동성부모 슬하의 양육에 관한 논쟁
퀴어부모들이 슬하에 자녀를 키우면서 많은 편견, 오해와 고정관념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동성애혐오주의자들은 게이 아빠들 또는 레즈비언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면 자녀가 “게이나 레즈비언 된다”라는 망언을 늘어 놓습니다. 또한 “이성부모 롤모델의 부재로 인하여 자녀들이 비정상이 된다”라고 공격합니다. 이런 무리들에게 과학적 증거 따위는 필요 없어요. 그저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이나 삐딱한 편견으로 동성커플 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막말을 쏟아내지요.
그러나 퀴어부모 가정에 관한 여러 연구를 통해 가족의 행복은 ‘동성부모냐 이성부모냐 하는 가족의 형태가 아니라, 부부 사이의 관계와 부모와 자녀가 갖는 관계의 질’이라고 밝혀졌습니다. 또한 연구결과 동성부모의 슬하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신체적, 정서적으로 건강하고, 잘 적응하며 학업에도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 이런 과학적 연구를 통해 저희 가정은 큰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셈 이지요.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싸, ‘혐오세력들에게 반격을 가할 수 있는 과학적인 언어 일세’.
어느 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지뇽뇽님의 ‘동성커플의 자녀, 가정에서 행복감 느낄까’라는 기사 제목이 제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이제부터 이 기사가 참고한 논문 두 편을 우리 함께 들여다 보기로 해요.
아동의 건강을 연구한 Bos와 동료들의 연구
논문제목:
동성부모 가정과 이성부모 가정의 아동 건강 : 국가 아동 건강 서베이 결과를 중심으로
Same-sex and different-sex parent households and child health outcome: findings from the National Survey of
Children’s Health
이 연구의 배경에는 매우 흥미로운 역사가 담겨 있어요. 2013년 미국의 국가 건강 인터뷰 서베이 조사(NHIS: National Health Interview Survey)에 따르면 미국의 동성커플은 69만 커플이었고, 이 가운데 19% 커플이 17세 미만의 자녀를 양육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 입니다. 1980년대 정자은행이 레즈비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레즈비언 베이비붐”이 일어났고, 이후 20년이 지난 2000년대에 동성부모에게도 입양이 허용되면서 “게이 베이비붐”이 일어났습니다.
한국에서 동성결혼이 법제화가 된다면 결혼하는 커플이 늘어나고 퀴어부모들이 입양이나 인공수정을 통해 자녀를 양육하는 레인보우 패밀리의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한국에서도 ‘퀴어 베이비붐’ 시대가 하루빨리 도래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연구도구
본 연구자들은 가족관계(커플간(c)의 관계, 부모-자녀간(間)의 관계)와 육아 스트레스 그리고 아동의 건강, 정서적 어려움, 적응행동과 학습행동을 측정했습니다.
-연구결과
연구결과 부모와 자녀 관계가 좋을 수록 전반적으로 자녀가 건강하였고, 부부와 부모-자녀의 가족 관계가 좋을수록 자녀가 겪는 정서적 어려움과 부모의 양육스트레스가 낮게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결과를 통해 저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나와 남편이 금슬 좋게 살면서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주어야 한다. 우리의 사랑과 돌봄으로 딸내미는 신체적, 정서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느끼며 성장해 나갈 수 있다’라구요.
-논의
이 연구는 인구기반표본을 이용하여 동성커플을 실험군으로, 이성커플 대조군으로 나눈 표본을 비교하였습니다. 동성부모와 이성부모의 슬하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결과는 차이가 없게 나타났습니다. 이런 결과는 동성부모의 자녀들이 많은 문제를 갖게 되므로 동성부모들에게 양육권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거짓 선동 임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줍니다.
이 연구에서 이성부모들에 비해 동성부모들이 양육 스트레스가 높았습니다. 저자들은 동성부모들이 받는 사회문화적 스포트라이트가 양육 스트레스 증가에 관련이 있는지를 밝히는 향후 연구를 제언하였습니다. 지뇽뇽님은 동성부모들이 스트레스가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이 잘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동성애혐오적인) 사회가 각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혐오세력들은 부디 각성하시기 바랍니다.
동성부모와 슬하의 자녀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지금까지 제가 Bos와 동료들의 연구를 살펴보았는데 어떠신가요? 보다 깊게 논문을 살펴보고 싶은 분들은 링크를 따라 가셔서 읽어보시길 권해드려요.
Bos와 동료들의 연구 설계를 들여다보니,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연구가 시도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표본을 얻으려면 국가가 조사사업을 하여 그 결과로 통계 수치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실정은 어떤가요? 결혼하거나 동거하는 동성커플의 수 그리고 그들이 양육하는 자녀와 가정은 그저 유령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죠. 왜냐하면 기초적인 조사가 없으니 통계에도 나타나지 않으니까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한국과 두 편의 연구가 수행된 미국과 호주의 인구주택조사표 양식을 비교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미국과 호주는 동성커플과 자녀 그리고 가정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조사하고 있는지를요. 다음 칼럼에서는 두번째 연구로써 Crouch와 동료들의 연구 여정을 찾아가 보도록 해요. 동성커플 부모들과 그 슬하에서 자라는 귀염둥이 자녀들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레인보우 패밀리 여러분 우리 모두 힘내자고요!
올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행성인 회원님들 모두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송구영신하시길 기원 합니다.
*참고문헌
지뇽뇽. (2016.5.10). 동성커플의 자녀, 가정에서 행복감 느낄까. 동아사이언스.
(자료출처) http://m.dongascience.com/news.php?idx=12025
Bos, HM., Knox, J., Gelderen, L van Rijn-van., Gartrell, NK. (2016). Same-sex and different-
sex parent households and child health outcome: findings from the National Survey of
Children’s Health. Journal of Developmental Behavioral Pediatrics. 37(3): 179-187.
(자료출처)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6309949/pdf/nihms-99616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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