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행성인 전 운영위원)
행성인을 알게 된 계기
일터에서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부서에서 가장 좋지 않은 처우를 받으며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만족하면서 노동하는데 부서에 훨씬 좋은 처우의 채용 공고가 났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허락되지 않은 자리였습니다. 이미 내정자가 있었습니다. 관리자는 그를 뽑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핑계를 대며 이미 근무하고 있던 저의 지원을 막았습니다. 얼마 후에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동료들이 관리자를 찾아가 긴 대화를 나누고 왔습니다. 그러자 관리자는 저에게 면접 기회만 주겠노라 선심쓰듯 말했습니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면접을 봤는데 별안간 제가 내정자를 꺾고 최종 합격했습니다.
이게 파국의 시작이었습니다. 관리자는 기분이 상했고, 굳이 저에게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몇 개월 만에 너무 지쳐서 퇴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황급히 퇴사하면 이래서 여성 노동자를 뽑으면 안된다는 선례가 될 것같았습니다.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래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조금만 버티고 퇴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러던 시기라 월급의 일부라도 의미있는 곳에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벽장에 있던 제가 인터넷을 검색해서 행성인이라는 단체를 알게 되어 후원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운영위원을 하다
막상 후원을 결심하니 어떤 단체인지 궁금해서 회원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모습과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모습이 마냥 좋았습니다. 그래서 왕복 3시간 거리에 있는 행성인을 자주 가던 어느날 운영준비단 제안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거절하려고 했습니다. 다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당시 행성인은 비상체제였습니다. 쏟아지는 소식을 들으며 행성인에게 실망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행성인이 수많은 비판과 비난을 회피하지 않고 책임감있게 마주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더불어 행성인이 저에게 운영준비단을 제안한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활동 경험이 거의 없어 아무 질문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제안하는게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수락했습니다.
다양한 행성인의 논의에 진하게 참여할 수 있어 보람차고 뿌듯했습니다. 솔직히 힘든 순간도 많았습니다. 2주마다 진행된 회의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저는 새벽에 출근해야 하는데 저녁에 시작된 회의는 매번 밤늦게 끝났고 그때마다 집에 와서 씻고 자기 바빴습니다. 그래도 이상하게 좋았습니다. 제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앉아있으면 여러 언어로 설명해주고, 어떤 질문을 해도 대답해주고, 아무말이나 해도 귀기울여 들어주더라고요. 행성인은 제가 자리잡을 때까지 각자의 온도로 곁을 내준다는 인상을 물씬 느꼈습니다. 늘 느끼지만 행성인은 난로에서 막 꺼낸 군고구마처럼 따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운영위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사람들
2024년의 운영위원회는 3주마다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행성인 깃발을 꽂는 여러 자리에서도 만났습니다. 게다가 이번 운영위원은 3년 가까이 합을 맞춘 사이입니다. 최근 3년을 기준으로 본가에 있는 내 사랑 털친구들보다 많이 본 사이입니다. 그동안 저는 동지와 친구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요. 처음으로 행성인 운영위원은 동지이자 친구였습니다. 다만, 살가운 사이보단 단단한 사이였습니다.🤣 운영위원이 끝나면 이들이 많이 그리울 것같습니다. 웹진에 적기 위해 운영위원을 하며 기억에 남는 순간을 떠올려봤는데요. 저는 순간보다 사람들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그래서 운영위원들에게 짧은 글을 남기려고 합니다.
❤️ 지오님: 호수같은 사람. 저의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을 매번 인내력있게 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웅님: 위트있는 사람. 글과 말에서 위트가 묻어나옵니다. 때때로 긴장감있는 순간을 부드럽게 만드는 능력이 부러워요.
💛 오소리님: 안정적인 사람. 다른 상근 활동가들이 바빠서 행성인을 살피기 어려운 순간에도 안정감있게 행성인을 지키는 존재같아요.
💚 호림님: 든든한 사람. 어떤 논의도 피하지 않는 단단함. 호림님을 통해 말하는 방법을 많이 배웠습니다.
💙 소유님: 섬세한 사람. 행성인의 보이지 않는 빈틈을 채우는 역할을 묵묵히 해주는 사람. 정말 행성인에 대한 애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 해리님: 다정한 사람. 다들 편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일상적으로 신경쓰는 사람. 타인에 대한 따스함이 존경스러워요.
따스한 곁을 내주는 동료가 되자
이번 총회를 기점으로 이제 운영위원을 떠납니다.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에너지가 남은 상태에서 운영위원을 그만 둬야 앞으로 행성인의 더욱 많은 자리에서 저의 역할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떠나려고 합니다. 그동안 제가 운영위원을 하는데 도움을 줬던 수많은 행성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진하게 남깁니다. 혼자라면 완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더불어, 성소수자 운동에 관심있는 행성인이라면 꼭 운영위원이 아니더라도 행성인에서 자기 자리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차가운 세상에서 우리끼리라도 따스한 곁을 내주는 동료가 됩시다. 더욱 다양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길 기대하겠습니다. 우리 백년만년 행복하게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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