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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

[활동가 연재] 상임활동가의 사정

by 행성인 2025. 3. 25.

지오

 

매일이 거의 비슷합니다. 회의와 회의와 회의와 집회와 집회와 집회가 이어지는 날들입니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시간에 쫓겨 다니기 바빠요. 그러다 오늘 아침 집을 나서는데 문득 노오란 개나리가 띄었어요. 꽁꽁 언 겨울인 줄만 알았는데, 변덕스런 날씨에 더디게 오는 줄만 알았는데, 느닷없이 봄을 느낍니다. 한 번 눈에 띄이니 계속 보이네요. 길가 곳곳에서 개나리를 만났어요. 사방에 성큼 온 줄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봄이 옵니다. 우리 모두에게로.

 

 

오소리

 

윤석열 파면 선고 기일이 좀처럼 잡히지 않으면서 퇴진 시국이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때론 지치지만 광장이 자주 열리니 덕분에 회원분들과 만나는 기회가 늘어나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함께 투쟁할 수 있어 즐겁습니다. 

 

3월 한 달 동안 짜증나고 분노를 유발하는 소식들이 자주 들려왔지만, 안 좋은 소식만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저희 부부와 동성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 소송 대리인단이 제40회 한국여성대회 <성평등 디딤돌>상과 제27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했습니다. 저희의 소송이 승소한 것은 우리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승리였기에, 특별상 수상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지치고 화나는 소식이 많은 요즘, 저희의 수상 소식이 작은 위안이 되기를, 혼인평등으로 가는 여정의 디딤돌이 되기를를 바랍니다.

좌) 제40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성평등 디딤돌>상을 수상한 김용민·소성욱 부부와 소송 대리인단 우) 제27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한 김용민·소성욱 부부와 소송 대리인단 (사진출처: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남웅

 

다음 국면을 맞이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정체가 길어지고 있다. 의심의 여지 없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미뤄지고 부정당한다. 한주를 시작할 때면 '이번주는 판결이 나겠지?'를 주문처럼 외지만, 잠깐의 확신은 수요일이 지나가면 이번주도 가망 없겠다는 긴 체념으로 넘어오기가 벌써 몇번째인지 모른다. 그 사이 큰 불이 났고, 다른 나라에선 큰 지진이 났다. 마지막 일요일인 오늘은 눈비가 섞어 내렸다. 봄이 오다가도 멈칫, 하지만 새 계절은 오고 희망이든 절망이든 열어낼 것이다. 시간을 쪼개서 영화와 전시를 보고 일과 상관 없는 문장을 조금이라도 읽고 쓴다. 집회가 아닌 자리에서 사람을 만나고, 안해먹던 음식을 요리하고 옷장을 정리하고 분갈이도 해준다. 얼마 전 계획한 프로그램에서는 준비한 것과 다른 반농담 같은 이야기들만 오갔다. 참여자 중 하나는 건설적이지 않다는 피드백을 했는데, 성과에 대한 강박은 불안의 다른 이름 아닐까. 지금은 잠시라도 미끄러짐을 받아 안을 시간이 필요하다. 

 

 

호림

 

비상행동 공동의장단의 일원으로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결정을 촉구하는 14일의 단식을 진행했습니다. 지난 3월 21일부로 단식을 중단하고, 3박4일의 병원 회복 기간을 거치고 돌아왔어요. 

 

난생 처음 경험하는 단식 투쟁이라 ‘내가 잘 버텨낼 수 있는 일일까’하는 두려움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오랜 세월 투쟁하며 살아오신 공동의장님들의 경험을 배우며, 비상행동 구성원들의 돌봄을 받으며, 성소수자 운동 동료들의 지지를 받으며 무사히 2주의 시간을 통과할 수 있었어요.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끝없이 지연되는 위중해지는 상황 속에서 더 큰 힘을 내는 투쟁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단식을 중단했기에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보식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행성인 회원들을 포함해 단식 이후 만나는 많은 분들이 제 건강을 걱정하며 안부를 물어보시는데요. 저는 아주 건강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걱정해주시는 마음들 모두 정말정말 고맙습니다. 

 

비상행동 공동의장단으로 함께 하는 내내, 특히 단식 기간동안 저의 가장 큰 힘의 원천은 언제나 광장을 채우는 수많은 무지개와 트랜스 플래그였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의장단으로 퇴진투쟁에 함께 하면서 맨 앞 줄에 서거나, 무대에서 발언을 할 일들이 참 많은데요. 그럴 때마다 제 존재가 광장의 성소수자들에게도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집니다. 조금 지치기도 한 시간을 지나고 있는데요. 서로 힘을 나누며, 윤석열 퇴진으로, 모두가 존엄하고 평등한 세상으로 함께 걸어나가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