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넛(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퀴어 커뮤니티에 나와서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와 연인을 사귄 지 어느덧 2년이 넘어간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정말 짧은 시간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이전의 23년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이다. 게이 수행을 2년 동안 꽤 충실히 하면서 제일 크게 느낀 점 중 하나라면, 게이 섹스는 '유혹'이라는 것이다. 동성애가 악한 유혹이라는 말은 퀴어문화축제 건너편에서 확성기로 음악을 트는 혐오 세력이나 극우 개신교 세력이 흔히 할 것 같은 말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맥락이 다를지 모르지만, 사회에서 흔히 터부시되는 섹스, 그러니까 항문에 삽입된 남성기로 전립선을 자극시켜 오르가즘을 느끼는 일련의 행위를 여러 위험이라면, 그리고 남들의 시선이나 HIV를 포함한 성병 감염의 가능성이 있어도 기어이 찾는 데에는 유혹이 있는 게 맞다.
그냥 게이 섹스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섹스에는 유혹이 있지 않은가 싶다. 많은 사람들이 섹스를 하지만, 이야기하는 것은 공적인 자리에서 부적절한 것으로 여겨진다. 섹스는 말하기 부끄러운 것, 지나치게 개인적인 것,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취급된다. 이런 터부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섹스를 원하며 연인에게서든, 섹스 파트너에게서든, 아니면 어플에서 만난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서든 성적인 만족을 찾는다. 유성애자 중 섹스를 싫어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게이 섹스, 더 넓게 보면 섹스 전반의 욕구를 채우고 싶어하면서도, 몰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찾으려 하는 이는 결국 섹스를 하는 사람들 자신이 아닐까.
게이 커뮤니티도 예외는 아니다. 게이들의 섹스는 조심해야 하는 것, 예방 수칙을 꼭 지켜야 하는 것, 심지어 게이 커뮤니티에서 진지하게 논하기에 걸맞지 않은 것처럼 여겨진다. 성병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 삽입섹스 시 콘돔을 꼭 사용하라는 슬로건은 각종 공식 기관과 단체를 통해 퍼지며, 노콘노섹은 세이프섹스를 위한 기본 상식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노콘섹스의 유혹은 더 쾌감을 느끼기 위한 욕망, 혹은 식이 되는 상대와 섹스를 하기 위한 욕망에 의해 힘을 얻는다.
서로가 얼마나 식을 충족하는지, 혹은 각자가 얼마나 성관계에 절박한지에 따라 권력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런데도 HIV나 성병 감염은 감염된 당사자가 조심하지 않아서, 문란해서, 혹은 (노콘노섹이라는 너무도 상식적인 슬로건이 버젓이 있음에도) 섹스가 너무 고파서 저지른 ‘실수’로 쉽게 이해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유혹의 역동을 비롯하여 개개인의 성적인 욕망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게이 커뮤니티 구성원들 자신이고, 그들이 너무도 쉽게 규범처럼 받아들이는 세이프섹스 혹은 노콘노섹이라는 슬로건이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오해할까봐 덧붙이는 말이지만 모든 성관계에서 콘돔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사용하는 것이 의미없다고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세이프섹스는 부정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성적 권리다. 여기서는 ‘세이프섹스’라고 흔히 여겨지는 범주 밖의 성관계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려워지는 이유와 세이프섹스 슬로건에서 끝나는 성적 담론의 한계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것이다.)
콘돔을 사용한 ‘세이프섹스’가 성적 권리인 만큼, (당사자들의 합의가 전제된) 노콘섹스도 당연히 성적 권리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도 노콘섹스는 무모한 것이나 선뜻 논할 수 없는 것, 위험한 것으로 여겨진다. 노콘섹스가 위험한 행위라는 말이 맞을 수 있다. 그렇지만 콘돔을 사용하고 프렙을 챙겨먹는 세이프 섹스만이 개인이 챙겨야 할 센스이자 권리, 그리고 마땅한 처사라는 담론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게이 커뮤니티에서의 섹스는 영원히 있으면서도 없는 것, 논하기 적절치 못하지만 커뮤니티의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하는 것, 논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세이프섹스’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수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감춰야 할 것, 또한 그 섬세한 다이나믹이 생략된다.
만약 게이 섹스를 수행하는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게이 섹스를 ‘유혹’으로 만드는 데 어느 정도의 기여를 한다고 하면, 유혹을 느끼고 그 유혹에 넘어가는 것, 혹은 유혹에 넘어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애써 숨기지 않을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식이 되는 사람과 관계를 하고 싶은데 상대가 노콘 섹스를 원한다면, 나는 나 자신이 콘돔을 사용한 섹스를 원한다고 해도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관계를 가지는 데 동의할 수도 있다. 혹은 내가 섹스에서 더 큰 쾌락을 원한다면, 나는 수반되는 여러 위험을 인지하면서도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섹스를 원하거나 그 제안에 동의할 수 있다. 이런 유혹을 원하는 것이 나의 잘못이라고, 내가 문란해서 그런 것이라고, 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 성병이 퍼지는 것이라고 매도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문란한 것이 맞다고 하겠다. 식의 다이나믹 안에서든 다른 이유에서든 나는 열세에 처할 수 있고 그 차이 앞에 가드를 내릴 수도 있다. 이를 문란한 증거로 삼는다면, 난 또한 유혹에 취약한 인간이라고 하겠다. 내가 이렇게 유혹에 취약한 인간임을 드러내고 담론의 주제로 삼는 것이 딱히 부끄럽거나 망설여지지는 않는다. 문란한 섹스에 대해 더 드러내 놓고, 활발히 이야기할 수 있어야 오히려 ‘세이프섹스’에 대해서도 잘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유성애자 게이 커뮤니티, 그리고 나 자신의 일부가 된 ‘문란할 유혹’을 이제는 받아들이자고 말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사실 나도 자신의 성적인 욕망이나 성애,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꺼려하고 그것이 부적절한, 혹은 성소수자 인권활동을 할 때 굳이 활발히 꺼낼 필요가 없는 무언가가 아닌를 은연중에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의 성애와 욕망을 돌아보고 이를 활동으로 풀어내는 연습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하는 중이다. 성적인 욕망과 행위가 법적으로 인정받지도, 사회의 정상성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일단 나 자신의 욕망과 유성애 성소수자 수행에 대해 좀 더 솔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두려움, 혹은 공포는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이다. 매력적인 상대방이 노콘섹스를 제안할 때, 혹은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도 선뜻 논할 수 있는 범주에서 벗어난 그런 성관계를 제안할 때, 사회의 정상성에 맞지 않는 게이 섹스의 욕구 앞에서 흔들릴 때, 나에게는 사회적 터부, 성병 감염, 망섹 등 여러 위험 요소가 공표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위험 요소들은 나를 비롯한 여러 퀴어 커뮤니티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문란한 관계에 낙인찍고 선뜻 이야기하게 하지 못하며, ‘세이프섹스’에 대한 담론조차 꺼내기 껄끄럽게 만든다. 비단 세이프섹스와 세이프하지 못한 섹스는 함께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동성애와 게이 섹스라는 강력한 유혹 앞에서, 사회에서 터부시되는, 퀴어 커뮤니티 안에서도 제대로 논하지 못하는 유혹들은 종종 두려움을 무디게 한다. 마음 속에서는 억눌렀던 성애를 비로소 직면하게 한다. 욕망과 이성,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가지 태도가 서로를 대면한다. 두려움만으로 인생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없기에, 가끔은 유혹에 휘둘리고 싶은 욕망과 성애가 있다면, 저쪽에서는 여러 가지 섹스에 대해 이야기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며 성병 감염에 대한 두려움과 터부시가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이성이 나의 몸과 마음을 읽는다. 이는 나로 하여금 일상에서도 성애와 유혹에 대해 직면하고 이를 활동으로 풀어낼 수 있게 한다.
2025년 행성인 총회에서는 행성인의 주된 활동의제로 ‘성적 권리’를 이야기했다. 각자의 성적 권리에 대한 담론에는 정말 다양한 내용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성적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때, 나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HIV 감염인도 자유롭게 섹스를 할 수 있는 권리. 게이 커뮤니티에서 서로의 절박함이나 식 여부에 상관없이 자유로운 합의에 기반하여 콘돔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은 섹스를 즐길 수 있는 권리. 자신의 성적 수행이나 식,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터부시되지 않을 권리. 결국 좁은 ‘세이프섹스’ 담론을 넘어섬으로써 오히려 세이프섹스와 그 범주에서 벗어난 섹스도 적극적으로 실천하며 즐기고 넓은 의미의 '안전'을 이야기할 권리. 세이프섹스를 포함한 즐거운 섹스를 할 수 있는 권리. 유혹에 취약하고, 유혹을 원한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 세이프섹스를 하지 않아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권리, 이런 것들 말이다. 나 자신도 제대로 챙길 줄 모르는 권리를 활동으로 외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나의 섹스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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