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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코코넛의 눈코입귀

[코코넛의 눈코입귀] 만나지 못함이 우리에게 지니는 의미

by 행성인 2025. 8. 25.

코코넛(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2020년대라는 새로운 십년기의 첫 1/4이 넘는 시간을 고립 속에 보냈던 나날들이 기억난다. 당시 기숙사 딸린 대학교를 다니던 나는 학교가 시작하고 나서 4월 중순이 되기까지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했다. 들어가고 나서도 대부분의 수업을 줌으로 진행하는 요상한 시간들이 이어졌다. 2인 이상 집합 금지, 4인 이상 금지, 몇 시 이후 영업 금지 등의 별의별 방역 규정들이 기억하기도 버거울 정도로 빈번하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QR코드 체크인, 백신 인증서, 1차 백신, 2차 백신, 3차 백신, 몇 차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대유행이라고 이름 붙은 것들. 그 시기를 지나고 더 이상 코로나 때문에 거리두기를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이 정부에 의해 내려졌을 때, 사회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바뀌어 있었다. 의료 정의나 기후 위기와 같은 사회적 의제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을 뿐 아니라 비대면 모임을 위한 인프라가 빠르게 구축되었다. 2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대면으로 모여서 진행되었던 각종 행사와 업무가 불가능해졌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누군가는 코로나 시기 동안 진행된 기술의 발전이 원래대로라면 5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이루어졌어야 할 발전에 맞먹는다고 했다. 메타버스 플랫폼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줌과 같은 비대면 회의에 대한 개념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익숙하게 자리잡았다. 다시 말해서, 사회는 비대면으로 모이는 것에 익숙해졌고, 다시 비대면으로밖에 모이지 못할 상황에도 어느 정도 대비를 하게 되었다. 업무 효율적인 면에서, 이는 나쁘지만은 않은 변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나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힘들게 먼 거리를 이동해서 회의를 하고, 수업을 듣고, 그러는 것보다는 좀 더 편안한 환경에서 업무를 처리하며 동일한 효율을 내는 것이 모두에게 더 이득 아닌가.

 

퀴어 커뮤니티에도 비대면 모임이 긍정적인 가능성을 많이 열어 주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만은 하지 못할 것 같다. 코로나가 이미 한 차례 사회를 쓸고 지나간 2023년에 퀴어 커뮤니티에 나오고 활동을 시작한 나는 코로나 이후의 퀴어 커뮤니티와 운동의 지형에만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더 오랫동안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살아왔거나 활동을 해온 사람들에게 들은 코로나 이전 커뮤니티의 지형은 내가 지금 겪는 그것들과는 사뭇 달랐다. 그리고 내가 중점적으로 활동하는 청년 성소수자 운동과 HIV/AIDS 인권운동에서 코로나로 인한 영향을 잘 느낄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사회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면 안 된다는 압박을 받고, 고립의 감정을 느끼기 쉬운 성소수자에게, 더 정확히 말하면 은둔으로 살기를 원하지 않는 성소수자에게 있어서, 커뮤니티는 단순히 술 마시고 노는 친구 집단을 넘어선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는 퀴어 커뮤니티에서 대안 가족을 찾기도 하고, 누군가는 집을, 누군가는 고향을 찾는다. 퀴어 커뮤니티는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반시티와 같은 웹사이트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판으로, 오픈채팅방으로, 어플에서 만난 친구들 그룹으로, 술번개로, 단체 활동을 하며 만난 동료 회원들과 활동가들로, 이태원의 클럽에서 만난 사람들로, 그리고 심지어 어플과 종로, 이태원에서 서로를 탐색하는 크루징의 관계로도 나타난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오프라인 커뮤니티에서 느낄 수 있는 안정감과 소속감은 분명 다르며, 지금 당장 내가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고 즉각적인 상호작용을 주고받을 수 있는 오프라인 커뮤니티는 소중한 존재이다. 소속감을 느끼던 오프라인 커뮤니티가 단절되었을 때, 혹은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을 잃거나 그들과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성소수자들은 비-성소수자들보다 더 심한 단절감과 외로움을 느끼기 쉽다. 그리고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관계를 이어나가기 어려운 퀴어 커뮤니티의 특성상, 한번 단절된 커뮤니티가 회복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단절되고 고립된 성소수자가 혼자서 혐오에 맞서거나, 혹은 상처를 스스로 위로하는 것은 커뮤니티 안에서 동료들과 함께 그렇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다.

 

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의 연대체인 청년 성소수자 단체에 활동하면서 코로나가 대학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미친 영향을 들을 수 있다. 코로나가 지나면서 활동을 종료한 동아리, 다시 생겼지만 이전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활동하는 동아리, 위기에 놓인 동아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몇 년 전에 활동했다고 들은 동아리가 왜 지금 안 보이는지 물었을 때, ‘코로나 때문에라는 한 마디로 대부분의 설명이 가능하다. 내가 지금 활동하는 단체는 코로나 이전에 활동하던 성소수자 동아리 연대 단체보다 더 적은 수의 연대체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의 코로나 여파 등으로 인한 침체는 수도권보다 비수도권의 대학교에서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소수자들이 본질적으로 사회에서 겪는 고립감, 대학교 안에서 아웃팅의 위험에 노출되며 정동아리 인준조차도 힘든 성소수자 동아리, 그리고 수도권 중심주의로 인해 부족한 비수도권의 네트워킹 인프라는 비수도권 대학교의 성소수자들, 그리고 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에 속하지 않은 성소수자들의 커뮤니티와 네트워킹의 기회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오프라인 상에서의 만남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느슨해진 대학 내 성소수자들의 네트워크는 내가 이 글을 쓰는 2025년까지도 온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사실 회복되었다고 하기에는, 코로나 시기 이전에도 청년 성소수자 운동은 온전히 동력을 얻지 못했다. 청년 성소수자들, 혹은 대학생 성소수자들이 코로나 이전보다도 굳건한 연대와 만남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아직까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청년 성소수자 단체에서 활동하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대면으로 만나며 활동의 동력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수 년 동안 박탈된 것이 대학 내 성소수자 운동에서는 큰 애로사항으로 작용했다. 아무리 줌과 메타버스, 비대면 모임을 위한 인프라가 갖춰졌다고 해도 모임의 기회가 보장된 대학 내에서도 제대로 된 대면 모임의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대학생 성소수자 운동에는, 코로나 시기가 아직까지 극복하지 못한 큰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의 내부 조직 역량과 더불어 학교 내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는, 동아리 밖에서 찾아오는 위협들이다. 성소수자 동아리를 비롯한 대학교 내 인권 단위에 대한 백래시와 혐오는 항상 존재해 왔으리라 생각하지만, 지난 4월 윤석열 탄핵 이후 한층 더 수면 위로 대두되었다. 학내 인권 기구와 단체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 의미 없는 반대에서 비롯된 여러 단위들의 폐쇄, 축소, 혹은 활동 제한은 현재 대학교 운동 사회 안에서 심각한 문제이다. 이는 구성원을 아웃팅에서 보호할 역할을 갖는 성소수자 동아리들에게 난제로 다가온다. 성소수자 동아리의 중앙 동아리, 혹은 가동아리 인준은 학내 기독교 동아리 등을 중심으로 거센 반대에 부딪히고 있으며, 학교 현장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동아리 구성원들에 대한 아웃팅, 조롱, 혐오 발언, 게시물 훼손 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불안정한 환경에서 대학교 내 성소수자 구성원들은 동아리에 남아 있는 것, 혹은 동아리 안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기 쉽다. 이러한 현상은 성소수자라고 예외가 아닌, 청년들의 탈정치와 성향과 맞물려 동아리의 조직력 약화와 활동 축소로 이어질 수 있고, 동아리는 성소수자 구성원들을 위한 커뮤니티 구축도, 학내 성소수자 인권 신장을 위한 활동도 지속해 나가기 어려운 현실에 부딪히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대학 당국이나 학생회 등은 이러한 현실에 대해 실질적인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지 않고 있으며, 코로나로 인한 네트워킹 약화, 그리고 윤석열 정권과 탄핵 정권을 거치면서 대학 내에서까지 세력을 확장한 극우 세력은 코로나보다도 더 지독하게 붙어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HIV/AIDS 운동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대면 모임의 기회 박탈을 떠나서, 코로나라는 감염병 사태 자체가 중요한 의제로 작용했다. 질병과 감염에 대한 낙인을 없애기 위해 투쟁하는 운동에서 전 지구적 감염병은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고립과 함께, 혐오와 차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에서 코로나 유행 초기에 대규모 게이 클럽에서 감염 사태가 발발하자 게이 커뮤니티, 그리고 성소수자 커뮤니티 전반에 대한 혐오가 수면 위로 올라오며 해당 클럽에 대한 물리적 혐오가 각종 매체에 보도되던 때가 (심지어 당시에 나는 퀴어 커뮤니티에 나오기 한참 전이었음에도) 기억난다. 실제로 당시 주변 지인들은 성소수자 혐오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으며, 동성애자 커뮤니티를 반사회적이고 감염병을 매개하는 집단으로 매도했다. 코로나 이후에 찾아온 엠폭스와 결부된 게이 섹스에 대한 혐오, 코로나라는 감염병과 HIV/AIDS라는 바이러스와 질병에 대한 혐오는 분리된 것이 아니다. 코로나 사태는 퀴어 커뮤니티가 코로나를 비롯한 여러 가지 병을 옮기는 장이라는 혐오 담론을 확산시킬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되었다. 2020년 신촌에서의 지하철역 광고에 대한 물리적 폭력, 이태원의 게이 클럽 문앞에 던져진 달걀들로 표상되는 혐오는 퀴어 커뮤니티는 감염병을 옮기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의 성적 권리 실천과 네트워킹은 사회 전체의 공동선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주장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이 담론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지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HIV/AIDS 인권운동이 커뮤니티와 사회를 대상으로 논의해야 할 메시지는 점점 많아진다.

 

 

 

퀴어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돌보고 지지하며, 위기와 혐오의 상황에서 함께 맞서 싸우는 것은 퀴어 인권운동의 양상에서 너무도 중요하다. 그리고 2020년대 초반의 코로나 사태가 이러한 대면 상호돌봄의 기회를 상당 부분 앗아갔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대학 내 성소수자 운동이 다시 동력을 얻을 기회를 언제 찾을지, HIV/AIDS 인권운동이 감염병에 대한 낙인을 떨쳐버릴 메시지를 언제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는 운동의 또다른 과제로 남겨졌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우리는 가능한 한 함께 만나야 한다. 그것이 활동의 효과를 위해서이든, 아니면 커뮤니티 구성원들 간의 상호 지지를 위해서이든, 우리에게 오프라인 커뮤니티의 기회가 박탈당하는 것은 너무나 많은 의미를 지닌다. 오프라인 만남이 어려워지는 것은 연대의 기회가 뜸해지거나 커뮤니티가 약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만남이 어려워진다는 사실 자체가 커뮤니티에 대한 낙인을 씌우고, 혐오 공격에 취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그만큼 취약하지만, 그만큼 오프라인 공간에서 만나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기도 하다. 이 글을 읽는 퀴어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에게, 자주 얼굴을 마주하고 만날 것을 제안한다. 함께 모여 서로를 돌보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혐오에 맞서 싸우고, 활동하며 연대할 것을 제안한다. 만에 하나 함께 만날 수 없는 상황이 찾아와도, 연대하며 버틸 수 있는 힘을 오프라인에서 찾을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