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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회원 에세이] 자살을 입에 올리는 것의 어려움- 무지개 돌봄 교육 참여 후기

by 행성인 2026. 3. 18.

소유(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몇년 전 나와 가장 가까웠던 친구가 세상을 떠난 후 여러가지를 찾아봤었다. 그때 읽은 것들 중엔 자살 예방과 관련한 것이 있었는데, 가장 기억나는 것은 대상에게 조짐이 있을 때 돌려 말하지 말고 자살을 시도하고 있느냐는 말을 직접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정말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생각하면서, 심폐소생술이나 여러 재난 대비 교육처럼 이것도 필수교육이 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올해 들어 내가 참여하는 중장년 모임에서 성소수자들에게 특히 인생 후반에 필요한 여러 교육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마침 친구사이에서 하는 관련 교육이 떠올라 들어보기로 했다.

 

 

 

무지개돌봄 - 성소수자 자살예방지킴이 양성교육이라는 이름의 이 교육은 지난 314일 토요일에 종로3가 친구사이 사정전에서 열렸는데, 2026년 첫 교육이라고 한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받아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성소수자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기대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거기다 보건복지부 자살예방 법정교육으로 인정된다고 하니 공신력도 있는 셈이다. 그래도 친구사이에서 만들고 운영하다 보니 아무래도 남성 동성애자가 대부분이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막상 가보니 정기적으로 계속 이뤄지는 교육인데도 모인 사람이 스무명 정도로 많을 뿐 아니라 구성도 참여계기도 제각각으로 다양해서 놀랐다.

 

강의는 자살 실태를 알아보는 시간과 지킴이로서의 행동 지침, 그리고 실습 시간 이렇게 세 꼭지로 이뤄졌다. 나눠준 손바닥보다 좀더 큰 워크북과 펜을 손에 들고 집중해서 강의를 들었는데, 다들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주변인을 떠나보낸 경험들이 있기에 정면에 쏟아진 시선이 정말 뜨거웠을 것 같다. 행동 지침은 다시 자살 신호를 감지하는 알아채기’ - 자살의 위험이 어느정도인지 확인하는 물어보기’ - 도움이 되는 자원에 이어주는 이어주기라는 세 단계로 나눠지는데, 각 단계에 영상이 준비되어 간접 경험을 해보고 워크북의 문제를 풀어볼 수 있게끔 구성되었다.

 

알아채기단계의 예시 영상은 강사의 말처럼 교과서적으로 여러 신호들을 발산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는데, 한편으론 우울증을 오래 앓았고 또 주변에서 봐온 내 입장에서 봤을때 그다지 특별하게 보이지도 않기도 했다. 실제로 나는 자살 시도를 한 경험이 없지 않지만, 나와 외견상 비슷한 사람을 보았을 때 위기자라던지 자살 신호라는 말로 쉽게 떠오르지 않을 것 같은 것은 왜일까. 우울을 표현하는게 내 주변에서 너무 일상화되어 있는 것일수도 있고, 그다지 가깝지 않은 사람을 상상해서 그런지도 몰랐다. 혹은 자살이 너무나도 극단적이어서 그 표현들과 쉽게 연결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이게 다음 단계에서 문제가 된다.

 

바로 자살 신호를 알아채고 물어보는 말 그대로 물어보기단계인데, 서두에 내가 잘 몰랐었다고 했던 바로 그 부분이다. ‘자살 예방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살에 대해서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묻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문화적으로 죽음을, 특히 자살을 터부시하고 언급하지 않으려 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정이고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 단계에서는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묻는지(예컨대 자살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내포하지 않는 것과 같은)와 무엇을 묻는지도 중요하며 이 단계 자체가 또한 중요한 이해와 공감, 치유의 과정이 될 수 있다는게 중요한 배움이었다.

 

그리고 이어주기 단계는 이 사람을 필요한 자원에 연결시켜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112119 같은 긴급 구조나 심리상담 및 정신건강의학과와 같은 전문가와 연결하는 것 뿐 아니라 위기자의 인적 자원을 확인하고 연결되는 것도 포함된다. 나는 교육과정 내내 내 친구와 나와의 관계를 돌이켜보고 평행우주처럼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있었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왜 부고를 전할 때처럼 더 많은 사람들의 연락처를 얻어서 충분히 소통하고 도움을 얻지 못했던가 무척 후회가 되었다. 열기가 뜨거운 만큼 여러 질문들이 나왔고 여기에 대한 강사 및 보조강사 분들의 답변이 인상적이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어디까지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내가 맡아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을 활동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잘 알지만, 아주 가까운 친구 관계에서는 실제로 너무 지치고 힘들어지기 전까지는 그것을 잊고 뛰어다니기 쉬운 것 같다.

 

세 가지 단계를 익힌 후 가진 실습시간에는 사실 큰 기대를 하진 않았는데, 막상 지나고 보니 이 시간이 가장 큰 소득이었던 것 같다. 옆자리 사람과 말하기 훈련 정도를 해보는 것일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위기자로 잘 빙의(?)된 보조 강사 분들을 상대로 배운 것들을 실습해보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영상을 볼 때야 저정도면 바로 도움을 주어야지 생각했지만, 막상 일상에서의 대화는 그렇게 점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고 다른 사람들도 자살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말할때는 엄청 버벅이고 몇마디 하지도 못했으면서 정작 다른 사람의 실습을 볼때는 또 엄청 답답해했는데 나도 그렇게 보였을거라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예전에 행성인 회원모임에서 참여했던 동성혼 말하기실습도 생각이 났는데 나처럼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에게는 강의때는 잘 모르니까 배우는 입장이라는 것을 항상 상기하는 것이 중요한 듯 하다.

 

이렇게 교육을 마치고 또 한가지 중요했던 것은 자기 돌봄에 대한 이야기였다. 시간관계상 짧았지만 참여한 사람들이 각자 어떻게 자기돌봄을 하는지를 들어봄으로써 자신 케어도 중요하다는 것을 빼놓지 않고 상기하는 효과가 있었다. 나는 원래 갖고 있던 취미를 이야기할까 하다가, 그래도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심리상담이었다는 생각에 그것을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한 달 동안 실천할 과제를 받은 다음 수료증을 받고 박수를 치면서 교육은 마무리 되었다.

 

사실 이 글을 쓰는데 망설임이 없지 않다. 내가 자살예방교육을 받았다고 드러내고 있다가 주변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사람들이 나와 이 글을 어떻게 볼까 하는 두려움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크다. 중간에 보조강사님이 주변 사례를 말씀하시며 나는 내 할 만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고 하신 얘기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또 전문기관을 이어주는 데 있어서는 활동 네트워크를 알고 있고 성소수자 친화적인 상담치료와 정신과를 다니며 약을 복용하는 사람으로서 더 매끄럽게 할 수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론 SNS에서 위기상황으로 짐작되는 게시물과 그런 글들을 보고 메시지나 신고를 했다가 비웃음을 당하는 경우들도 떠오르는데, 그땐 어떻게 행동할지 고민이 든다.

 

좋은 교육을 만들어주신 친구사이와 마음연결 분들께 다시금 감사드리며, 시간이 된다면 꼭 한번 이 교육을 들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행성인에서도 회원모임으로 교육이 이뤄지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