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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활동 후기] 트랜스 엑스포 탐방기 - 살아라, 그대가 무엇이든!

by 행성인 2026. 3. 18.

애옹 (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 인권팀)

 

 

 

 

<트랜스 엑스포>가… 뭐예요...?

 

각 지역의 퀴어퍼레이드, 프라이드 엑스포… 참여만 했던 행사들이다. 대부분 부스가 있었고, 굿즈 덕분에 주머니가 털리고, 행진도 했다. 그런데 트랜스 엑스포라니? 상담과 뷰티, 타로, 만화책이 있다고? 포스터 일러스트를 보고 더더욱 짐작할 수 없었다.

 

당일날 행사에 가니, 역시 부스! 굿즈! 토크! 구성이었다. 개인 셀러 부스가 있었고, 여러 토크와 강연 프로그램,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한 타로와 뷰티 같은 체험형 부스도 있었다. 타로 부스는 나비님이 진행하고 계셨는데, 현재의 고민에 대해 풀이 죽은 표정으로 말씀 드리니까, 환하게 웃으시면서 좋은 일이 있을 거라 말씀해 주셨다. 나비님이 주시는 온정의 느낌… 따뜻했다. 여기 퀴어 치유소인가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뷰티 부스는 젠더 표현의 다양화를 위해 꾸려진 곳 같았다. 메이크업을 하는 이안 활동가가 너무 바빠 보여서 따로 체험하러 가진 못했는데, 다들 뷰티 부스에 갔다가 나오면 반짝반짝해졌다. 몸도 마음도 모두! 개인적으로 다양한 젠더 표현에 대한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의 추구 미와 사회적 기준이 맞지 않으면 비난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혹은 젠더 표현이 패싱되는 젠더와 맞지 않으면 이상하게 보는 시선들은 너무 흔하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만의 젠더 표현을 돕는 장치로 뷰티 부스를 만든 건 정말 좋았다고 생각했다. 또 좋았던 점은 촬영 거부 여부에 대해서 선택할 수 있는 점이었다. 퀴어 퍼레이드같이 큰 행사의 경우, 이런 부분을 지키기가 어려운데, 트랜스 엑스포에서는 입장 팔찌를 받으면서 바로 촬영 거부 스티커를 받을 수 있었다. 아웃팅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촬영을 절대 하지 않는데, 이 스티커가 내 두려움의 보호막이 되어 준달까. 

 

 

내 젠더는 내가 챙겨요

 

사실 이런 행사들은 나와 같은 퀴어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상생활에서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일상생활에서는 원피스를 입을까, 청바지를 입을까 - 너무 여자처럼 보이지 않을까? 혹은 너무 남자처럼 보이지 않을까-에 대해 전전긍긍해야 하고, 여러 개의 퀴어 배지를 가지고 있지만, 가방에 달 수 있는 건 무지개나 관련 문구 없는 것만 가능하다. 무지개를 보고 내가 퀴어인 걸 알게 되면 곤란할 수 있으니까.

 

사회에서는 왜 늘 짧은 머리만 하냐며, 머리를 길러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애인이라고 말하면, “남자 친구”라고 정정해 주는 것을 견뎌야 한다. 사설이 길었지만, 자주 겪는 이런 일들은 대부분 퀴어 관련 행사에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너무 여자처럼 보이는 원피스를 입고, 화장하고 꾸미고 가도, 짧은 머리를 하고 가도 내 젠더를 묻거나 의심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말이다.

 

 

내 몸에 의학이 필요한가요?

 

인상 깊었던 강연은 강동성심병원 김결희 교수님의 성 확정 수술에 대한 강연이었다. 트랜스 젠더퀴어의 성 확정 수술은 이분법적인 성에 맞춰서 진행되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내가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기준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기를 살리면서 사회적 기준에 준하는 수술을 하기도 하고, 아예 성기나 유륜을 제거하는 성별 이분법 외의 수술들이 있었다. 의학적으로도 자신의 몸을 선택적으로 수술할 수 있고, 이분법적이지 않은 논바이너리를 위한 여러 수술 사례를 보고 많은 것을 배워갈 수 있었다. 

 

내가 의학적 수술을 받는다면 그저 궁적과 탑 수술을 생각했다. 하지만 신체에서 비가역적인 변화가 일어나면, 이후의 삶에서 선택지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 같아 꺼렸다. 그러한 비가역적인 변화를 고려해서 호르몬 요법을 받을 수 있고, 비가역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진행 여부에 대해서 다시 묻기도 한다고 하셨다. 물론 호르몬 요법 자체가 내가 원하는 부분만 취할 수 있고, 부작용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강연을 듣고 이분법적 성 확정 수술에 대한 고정관념, 그리고 내가 원하는 방식의 몸을 만들 수 있음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의학은 이렇게 발전해 가는데, 왜 법과 제도는 이러한 몸을 포용할 생각이 없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한편으론 이런 몸들이 많아져야만 또 변화가 따라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상자가 바라보는 세상

 

소수윗을 알게 된 지는 꽤 되었는데, 공연을 본 것은 두 번째였다. 상여자도, 상남자도, 하남자도, 하여자도 아닌 “상자”라는 가사가 유쾌했다. 앞서 소제목으로 썼던 “내 젠더는 내가 챙겨요”도 소수윗의 가사에서 따왔다. 소수윗의 공연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 이런 애매한 젠더를 가진 나 같은 사람이 늘 생각만 하던 머릿속의 질문을 해소해 준다는 느낌이었다. 만약에 누가 내 젠더에 대해 묻는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라는 긴장감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아, 그런데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소수윗의 가사가 더 와닿는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냅다 성별을 묻는 당신!
이런 상큼함은 처음일걸?
두 색깔만 있는 입장 게이트
이런 앙큼함은 처음일걸?

- 밴드 소수윗 - 이런 상큼함은 처음일걸?

 

 

 

살아라, 그대가 무엇이든!

 

트랜스 엑스포 포토존에 쓰여있던 글귀

 

 

얼마 전 <2026 한국대중음악상-최우수 일렉트로닉>부문에서 키라라님이 수상하셨다. 수상 소감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9년 전 이 자리에서 ‘친구들’이 자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며 “그때 하지 못했던 말을 지금 하겠다. 어떤 단어 하나를 말하지 못했다. 트랜스젠더. 트랜스젠더가 만든 앨범이 올해의 일렉트로닉 앨범이다”

- <2026 한국대중음악상-최우수 일렉트로닉> 키라라 소감 중에서

 

 

트랜스엑스포에서 럭키드로우를 진행하면서 나왔던 댓글이 있었다. 자신 이외에 처음으로 트랜스젠더를 만났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벽장은 두껍고 거세며, 세상은 냉혹하다. 

 

아웃팅 때문에 행성인에서 진행한 게릴라 액션에 참여하지 못하는 나, 행사를 가는 것 자체가 아웃팅이 될까 싶어서 트위터로만 소통하던 지인, 자조 모임에 가면 이런 행사에 처음 온다고 신기하다고 하던 참여자분들. 그들이 나올 수 있도록 이런 행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사 참여만으로도 두려워 집안을 선택하는 이들 또한 많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살아 있어야 하고, 그들이 나올 수 있도록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이 필요하고, '트랜스 엑스포'와 같은 행사들이 더더욱 많은 문을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존재는 용기다”라는 슬로건을 참 좋아하는데, 한편으로 우리가 용기 내지 않아도 받아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서 우리가 힘내고 버티고 노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주 먼 미래가 될 수 있지만, 같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살자, 우리가 어떤 존재이든지 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