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기획팀)

올해 초였을까. 행성인 공동운영위원장인 웅님께 연락이 와서 내가 이번 인권포럼 기획단에 추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였다. ‘대체 왜 날, 이제 퀴어 운동판에 뛰어든 지 1년 가까이 된 핏덩이를 왜?’ 동시에 그 제안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사실 별 고민 없이 1월 중순쯤 열린 첫 기획 회의에 참가하게 되었다.

지금 와서 말할 수 있는 거지만, 첫 회의 참여하신 기획단 구성원 중 얼굴이 익숙한 사람은 굉장히 적었고 실제로 알고 지내는 분들은 더 적었다. 다들 자기소개를 하며 어떤 단위에 소속되어 있는지, 그리고 지난 수 년 간 열린 인권포럼에 몇 번 정도 참가했는지를 말했다. 소개를 들으며 기획단에 있는 많은 분들이 풀타임 활동가라는 걸 알게 되었고, 한번도 인권포럼에 가보지 않은 나에 비해 다들 참여한 경험이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 ‘내가 왜 여기 앉아 있을까?’라는 의심을 계속 거둘 수가 없었다. 올해 처음 만들어진 인권포럼 기획단인데, 내가 껴도 될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머리가 복잡했던 첫 회의가 끝나고 방에 들어가 2월까지 잡힌 회의 일정을 보니 이왕 들어간 거 ‘네임드’ 활동가 사이에서 많이 배우는 ‘견습생’의 자세로 열심히 해보자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인권포럼 내에서 기획단이 조직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기 때문에 다들 첫 단추를 잘 꿰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기존 인권포럼 세션들처럼 성소수자 단체들의 성과 발표나 홍보가 아닌 기획단 내에서 짠 세션들과 패널들로 알차게 채워보려는 의지도 강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제목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세션 브레인스토밍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초반엔 작년이 성소수자의 가시화가 제일 활발하게 이뤄졌다는 의견을 수렴해서 ‘복면’, ‘민낯’과 같은 이미지가 제목에 쓰일 것 같았다. 그런데 중간에 조우석 KBS이사가 성소수자 운동이 좌파와 더러운 커넥션이 있다는 발언을 차용해서 ‘The 더러운 커넥션’이라는 튀어나왔고 다들 좋다는 평가에 최종적으로 결정됐다.

2016 제8회 LGBTI인권포럼 웹자보

 

세션을 기획하면서 아이디어 고갈에 시달릴 줄 알았는데 우려와 달리 재미있는 주제가 많이 나왔다. 하지만 역시나 주제들을 구체화하는 작업은 녹록지 않았다. 어떤 패널을 섭외할지, 그 패널들과 어떤 이야기들을 해야 할지, 내용이 풍부할지,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지 등등 하나의 세션에 많은 고민들이 담겨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LGBTI 인권포럼의 묘미는 시의성 있는 이슈를 다룬다는 점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중요하게 다뤄진 최근의 이슈를 짚고 이에 대한 고찰이 담긴 세션들을 다채롭게 꾸렸다. 게이들의 여성혐오를 다룬 ‘게이 인 더 미러’, 보수 개신교 세력과 정치의 커넥션을 다룬 ‘트랜스크라이스트’, 작년 미국 내 동성결혼 합법화 이후의 한국 커플들의 부러움과 그 고민들을 다룬 ‘동성커플 3종 세트’, 작년 한 해 폭발했던 퀴어 컨텐츠들의 생산자들을 모아 기획한 ‘판깔았슈’까지.

마침 나는 이번 인권포럼을 준비했던 기간 중에 활동 1주년을 맞이했다. 그간 웹진팀, 성소수자 부모모임, 그리고 전퀴모(전국퀴어모여라)까지 행성인 내부에서만 활동을 해왔다. 그러다 기획단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1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 저마다 다른 성격을 갖고 있지만 결국 비슷한 목표를 공유하며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이니 행성인 안에서 활동했을 때보다 사고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경험 많은 활동가들과 함께 기획을 해보니 그분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도 가깝게 관찰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열심히, 그리고 잘 활동해 왔다고 생각한 자신을 성찰해 볼 수 있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되돌아보니 시간을 쪼개서 회의에 참석하고 서로 머리를 맞대며 세션을 꾸리고 인권포럼 당일에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고생을 한 것보다 일하는 과정 자체가 너무나 즐거웠다. 의미 있는 행사에 한 부분을 차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특히 올해 인권포럼에서 맨 마지막 순서였던 무지개행동 총회에서 잠깐이었지만 기획단의 이름으로 박수를 받았을 때, 그리고 사람들이 인권포럼에 대해 칭찬을 해주었을 때 ‘이 맛에 이 바닥에서 활동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함께 두 달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기획에 힘 써주신 모든 기확단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더 나은 활동가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말도 전하고 싶다. 인권포럼이 끝나는 날까지 여러모로 얻을 게 많았던 시간들이었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활동가가 제 몫을 다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년에도 또 좋은 사람들과 좋은 포럼을 만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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