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크쇼의 내용을 각색하여 쓰여졌습니다.

 

 

사회자: 웅 | 패널: 푸른, 빌리 | 토크쇼 일자: 2019년 3월 29일 오후 7:30

 

 

 

 

토크쇼 1부: 과거

 

사회자: 두 분은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푸른: 홍보물에는 제 소개가 ‘비수술트랜스젠더에서 젠더퀴어까지’로 나갔지만 사실 제가 성소수자로서 처음 가진 정체성은 크로스드레서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크로스드레서로 4년 정도 활동을 했는데요. 여자 옷을 입기 시작할 즈음 ‘고백’이라는 오프라인 카페에 나간 적이 있습니다. 크로스드레서들을 위해 메이크업도 해주는 곳이었는데요. 지금은 거의 연락 안되지만 그 곳을 통해서 ‘시디(크로스드레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습니다. 되돌아보면 당시가 가장 즐거운 나날을 보냈던 시절이었습니다. 클럽 같은 곳도 놀러 가 보고, 여름에는 시디 친구들과 동해에 일박 이일로 놀러 가기도 했습니다. 해수욕장에서 비키니입고 놀다가 주변 남자들의 작업을 피해 도망갔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어울리면서도 시디들과 제가 동류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간간히 시디모임에 참가하는 트랜스젠더들도 저를 대할 때 시디보다는 트랜스젠더로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들을 통해 ‘넷포’라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알게 되어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트랜스젠더 인권단체도 없었고, sns가 등장하기 전이라 다음 카페 같은 커뮤니티가 트랜스젠더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커뮤니티에서 모임을 열면 보통 20~30명 정도의 회원이 참가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활동한지 얼마 안 돼서 운영진의 개인사정으로 인해 넷포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이대로 사라지는 게 아깝다는 생각에 커뮤니티 운영을 맡게 되었습니다.

 

넷포는 서로 정보를 공유하거나, 정기적인 모임을 여는 등 자조모임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또한 성별정정에 대한 노하우가 많이 공유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개명이나 성별정정에 대한 지원도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운영자로서 모임을 운영하고 성별정정 지원활동을 했습니다. 그 외에 외부에서 설문조사나 인터뷰 요청이 들어올 때 긍정적으로 대응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면서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차별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고, 그에 대해 실천적인 해결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30대 초반일 때 쯤 ‘조각보’가 생겨났습니다. 당시에는 정식단체가 되기 전 준비를 하는 과정이었는데요. 저도 트랜스젠더 인권 활동에 대해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준비 과정에 참가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가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시기였어서, 부끄럽게도 참가한다고 말만 하고 거의 도움을 못 드렸습니다. 그 점은 지금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이 후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 본가에서 일을 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신변 및 감정정리가 되었고, 다시 활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서 트랜스인권TF팀 팀장이었던 이드님을 알게 되었고, 이드님의 권유로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와 행성인의 트랜스인권TF팀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빌리: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게이로 정체화하고는, 아마 한 대학교 4학년 때쯤, 젠더퀴어로 정체화를 한 것 같아요. 게이로 정체화 한 것은 첫 커밍아웃의 시기와 엮여있어서 딱 떨어지는데, 젠더퀴어로 정체화 한 건 생각보다 무척 물 흐르듯 어느 순간 되어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약간 제 스스로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서서히, 하지만 확실히 일어났던 것 같아요. 그래도 어떠한 계기를 찾아야 한다면, 두 가지 맥락이 있어요. 제 개인적 서사와, 퀴어 커뮤니티에서 배운 개념들로 인한 언어화의 맥락이 있어요.

 

일단 제 개인적 서사를 조금 말씀 드린다면요, 초등학교 때 까지만 해도 제 별명은 ‘아가씨’였고, 남자이면서도 여자 같은 면이 많다고 언제나 평가되어 왔어요. 큰 키만 빼면 사실 2차 성징이 일어나기 전이라 ‘아가씨’로 불리기 적합했달까요 – 적당히 ‘여성’스럽고, ‘똑부러지고’. 그땐 목소리, 태도뿐만이 아니라 글씨체마저도 성별이분법에 갇힌 평가를 받아왔어요 – 아니 너는 ‘남자’인데 행동은 여자지? 같은. 그때는 놀림당하는 게 싫어서 했던 말은 ‘나 여자 아니거든?’ 이었어요. 사람은 ‘무언가는 아님’으로 자신을 정의를 내리지는 않잖아요… 그때 난 여자는 아니라고 하면서 내가 남자라고 덧붙이지 않은 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저는 언제나 남성보다는 여성을 롤모델로 삼았었고, 제 자신이 편해졌던 사춘기 마지막 무렵인 고등학교 시절 제 주변 친구들 중 가장 친한 아이들은 여자이거나 지금은 퀴어로 정체화한 남자 친구들이었어요. 그러한 맥락들이 결국 내가 게이로 정체화하게 되었던 밑거름이었겠거니 하고 있었지요, 그게 내 젠더퀴어함의 밑거름인 줄 깨달은 건 나중에, 좀 더 젠더에 대한 이해가 더 섬세해졌을 때였어요.

 

젠더퀴어란 단어를 가지고 제 젠더를 명명하고 이해하기 시작한 건 미국에서 나온 교차성으로 이해하는 젠더에 대한 담론에서 시작해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성별이분법은 언어로서 강화되고, 이러한 언어적 이분법을 성별에 적용하는 것은 식민지를 통해 전파된 유럽, 즉 백인의 인식이라는 것이죠. 그렇다고 보았을 때, 과연 백인이 아닌 나머지 비백인 문화권의 사람들을 백인의 젠더기준에 부합하게 여와 남으로 구분 지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고, 저는 그 질문에 ‘부합하지 않다’라고 스스로 답을 내렸어요. 사실 ‘그’와 ‘그녀’가 한국어에서 쓰이게 된 것도 유럽에서 만들어진 책을 일본에서 번역하고 그걸 재번역하며 만들어진 단어들이라고 알고 있거든요. 이렇게, 만약 이런 이분법적인 성과 그에 대한 언어의 체계가 제국주의에 기인한 것이라면, 저를 ‘젠더퀴어’라고 규명하는 것은 그런 백인 제국주의적 사고에 맞선 저항의 일종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에 말씀드렸던 언제나 남과 여 그 중간의 얇은 줄을 아슬아슬하게 타왔던 제 서사는 이상했던, 무언가 한 쪽에만 치우치기엔 걸맞지 않았던 저는 ‘젠더퀴어’로, 직역하자면 ‘이상한’젠더, ‘틀에 맞지 않는’젠더로 정체화하는 것이 그리 이질적이지도 않았구요.

 

저는 이러한 정체화를 통해 퀴어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자리잡혀 있고, 우리의 언행과 인식을 사로잡고 있는 성별이분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렇게, 젠더에 대한 사회적 맥락과 구조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자아와 이런 사회 구조적 틀의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더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구요. 미국에서는 주로 아시안계 커뮤니티에서 ‘남성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워크숍을 열기도 하고, 젠더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사회적인 맥락을 많이 타는지를 고민하고, 그에 대한 토론을 나눌 수 있는 장들을 마련해 왔습니다.

 

사회자: 언어의 제국주의… 맞아요 사실 ‘트랜스젠더’나 ‘젠더퀴어’도 영어 단어들이고 한데, 한국에서 성소수자 정체성과 운동을 논함에 있어서 외국에서 들어온 단어가 참 많은 거 같아요.

빌리: 네, 저도 정말 공감해요. LGBTQ와 거기서 파생 혹은 공존하는 여러 정체성에 관련된 단어가 영어문화권에서 거의 직수입되듯이 들어온 것 역시도 그런 언어의 제국주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영어 단어를 직수입해서 쓰는 건 성소수자 안에서도 영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누고, 여러 정체성에 대한 접근성마저 떨어뜨린다고 생각해요.

 

 

사회자: 네. 그에 대해선 다른 자리에서 더 이야기 나눠보도록 해요. 아까 푸른님께서 조금 말씀을 해주셨긴 하지만, 활동이 사실 그리 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활동을 하시면서 어떤 어려운 지점들이 있으셨는지 궁금하네요.

 

푸른: 인권활동을 한다고 월급이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으면 활동하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트랜스젠더는 지정성별과 성별표현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취업 자체가 어렵습니다. 자기유지하기도 벅찬 트랜스젠더들은 인권활동에 관심이 있어도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생일 때 사회복지를 전공했습니다. 이후 크로스드레서로 지내는 동안에 사회복지관에 취업을 했습니다. 물론 지정성별 남성으로서 취업했기 때문에 출근은 남성복을 입고 했습니다. 그 외의 취미 활동, 사적인 모임에 참가할 때는 여성복을 입을 때가 많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슬아슬한 줄타기일수도 있습니다. 딱히 의료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여성복을 입고 치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저라는 사람의 모습이 여성화(혹은 중성화일지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도 제 여성성이나, 복장 문제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닌 직장에서는 그 문제로 상사와 크게 다투기도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나니 ‘사회복지사’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몇 년 뒤 앞서 얘기한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겪었습니다. 생활이 어려워지니 결국은 그나마 가능성 있는 사회복지 분야에 구직을 했습니다. 당시 제가 인천에서 살고 있었는데요. 출퇴근을 1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사회복지관에는 대부분 지원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나름 경력도 있었기에 면접까지는 잘 갔는데, 면접만 거치면 여지없이 탈락하더라고요. 당시는 넷포 운영을 오랫동안 하면서 여성의 모습으로만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딱히 꾸미지 않아도 여성적으로 보여 더더욱 취업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한번은 면접에 갔는데, 면접관이 제 이력서를 보고 당황을 하더니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죄송해요. 저희는 지금 여자만 뽑으려고 하고 있어서요’ 라고요. 이력서에 붙은 사진만 보고 법적 성별이 여성인 줄 알고 면접에 부른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반년 이상 지나니까 취업 의욕도 사라지더라고요.

 

또 하나는 제 정체성 때문에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아까 시디(크로스드레서) 집단 사이에서 소외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는 언급을 잠깐 했는데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과거에는 젠더퀴어, 논바이너리라는 단어가 보편화되지 않아서, 저도 제 정체성을 크로스드레서나 트랜스젠더라는 카테고리에 넣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원래부터 의료적 조치나 성별정정에 대해 큰 욕구가 없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이 세상은 왜 남자, 여자 둘로만 나뉘어져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넷포에서 활동하는 평범한(사실 평범하다는 표현을 쓰는 것도 웃기긴 합니다) 트랜스여성이 수술 및 성별 정정에 대한 얘기를 할 때 같은 욕구를 가진 사람으로서 동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또한 당시 커뮤니티는 그런 일반적인(역시 웃긴 표현이네요) 트랜스젠더에서 벗어난 정체성을 가진 소수자는 쉽사리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난 존재인 트랜스젠더가 오히려 성별 이분법을 강화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당시에도 스스로를 비수술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고 활동을 했습니다. 나중에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가 생겼다는 걸 알고 동류(?)를 발견했다는 기쁨에 여행자 모임에 가보기도 했습니다.

 

빌리: 푸른님의 말에 많이 동의하는 바에요. 가시화되지 않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자기 전시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특성이 있잖아요. 한국 돌아와서는 ‘저는 젠더퀴어에요’ 라고 말을 더욱 못 꺼내게 되더라구요. 그렇게 말을 하고 나면 들어가야 할 부가설명이 너무 많은데 이걸 다 나열하긴 귀찮거나 그럴 시간이 없을 때가 많거든요. 이렇게 나 자신을 호명하는 단어 자체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정말 개인적인 관계에서의 가시화로부터 운동을 일궈나가야 하는 점이 힘든 부분인 것 같아요. 그리고 활동이라 함은 결국 사람들이 모여야 하는데, 서로가 젠더퀴어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어떻게 모아요… 저 마저도 그걸 드러내고 살지 않는데.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에 있어 힘든 점에 대해서는, 저는 다행히도 학계에 있어서 일상생활에서 제 정체성을 숨기지 않아도, 그리고 드러내도 별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일터나 일상생활이 보편적이지 않은 것, 문턱이 높은 것 역시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미국의 통계에 따르면, 석박사 학위가 가장 많은 집단 중 하나가 바로 트랜스젠더라고 해요. 근데 그만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여러 폭력에 시달리고, 죽어나가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지요. 결국 한 집단이 사회적으로 안전함을 쟁취하지 못해서 개인의 능력과 여러 사회경제적 상황으로 겨우겨우 살아남아야 할 때 이런 양극화가 생겨나는 것 같아요.

 

 

사회자: 일상생활을 지속하기가 힘들기에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점, 그리고 비가시화된 집단에서 응집하기 힘든 점들을 잘 설명해 주셨네요. 근데 활동은 힘들기만 하지는 않잖아요? 활동을 하시는데 있어서 즐거웠던 경험, 보람찼던 경험들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푸른: 비록 힘든 일이 있어도 저는 너무 우울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평범하게 사는 헤테로, 시스젠더들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했고, 거기에 슬프거나 우울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스젠더 여성, 남성과도 연애를 해봤고, 저는 제 나름대로 제가 살고 싶은 방식으로 산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도 스스로를 숨기기 보다는 커밍아웃을 하는 편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해방감을 느낀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네요. 가끔 시스젠더들을 보면서 성별 이분법에 갇혀 자유롭게 살지 못한다는 안쓰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오늘 와주신 여러분도 당사자라면 성소수자라는 것에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런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나름의 보람도 많이 느꼈습니다. 자조모임을 통해 힘을 얻는 회원들도 많았고, 개중에는 성별정정까지 마치고 ‘졸업’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지원해서 성별정정이 된 친구를 보면서 많이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SNS의 발달, 트랜스젠더 인권단체의 활성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침체되긴 했지만, 저는 커뮤니티를 하면서 나름대로 트랜스젠더 운동에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빌리: 일단 개인적인 뿌듯함이라 함은, 트랜스젠더 인권 운동에 참여하면서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겨오던 것들에 대한 저항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거에요. 제일 뿌듯하게 생각한 건 ‘지정성별’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을 때에요. 알고 있는 ‘성별’이, 법적으로 1, 2, 3, 4가 부여된 성별이 사실은 산부인과 의사, 가족 어른들이 임의로 지정한 성별으로 명하여, 그 사회적 권력을 우리가 되찾아오는 경험은 짜릿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를 포함한 그 모두가 자신의 젠더에 대해서 고민을 할 때, 경험을 되돌아보고 가장 편안한 지점을 찾아낼 수 있는 대화와 장을 만들어 나갈 때 뿌듯함을 느껴요.

 

 

 

토크쇼 2부: 현재

 

 

사회자: 2018년 행성인 트랜스TF가 만들어졌지만, 많은 회원분들도 알다시피 이전부터 행성인은 트랜스젠더와 관련된 사업들을 가져왔었어요. 잠깐 행성인의 트랜스 운동 역사를 설명해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행성인은 2005년 성소수자상담사업을 하면서 트랜스젠더 인권문제에 대한 의제를 다루기 위해 교육을 기획하기도 했고요, 2014년 즈음에는 정기회원모임으로 ‘TG토크쇼’를 진행했지요. 이는 단순한 이벤트 너머 당시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거나 논바이너리로 자신을 소개하는 회원들이 많아지면서 기존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지금의 이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로 단체명을 변경하는 흐름으로 연결됐어요.

 

2015년에는 미국 트랜스젠더 운동가 폴린 박 님이 방한해서 미국 성소수자운동을 강연해주기도 했는데요, 당시 터키의 성소수자 차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급하게 준비하면서 폴린 박 님도 함께 참여해 목소리를 보태주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뒤이어 6회차 세미나를 기획했죠. 단발적인 이벤트 너머 트랜스 의제에 대해 자기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모색하고자 기획했던 건데요. 당시 강의와 수다회, 보드게임 같은 프로그램들을 골고루 기획했던 기억이 나네요.

2017년 3월에는 촛불정국 이후 새로운 정부에 성소수자의 구체적인 목소리를 들려주자는 취지로 무지개행동에서 연속 집회 <불금의 약속 성소수자 촛불문화제-대통령후보들은 평등을 약속하라! 변화를 위한 성소수자들의 외침>을 기획하는데요, 이 때 행성인은 트랜스젠더인권단체 조각보와 함께 ‘나, 트랜스젠더’를 기획했어요. 칼바람에 대차게 모여서 떠들고 놀았던 기억이 나네요.

 

같은 해 하반기에는 노동권팀에서 성소수자 노동권에 대한 구술연구자료 <나, 성소수자 노동자- 둘로 나뉜 세상에서 살아남기>를 제작했죠. 여기에 트랜스 당사자의 노동 인터뷰가 나오는데, 자료집을 읽으면서 트랜스 인권에 대해 고민할 때 단순히 정체성만 분리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죠.

 

연속적이지는 않지만 행성인에는 이렇게 지속적으로 활동을 모색해온 흔적들이 있어요. 다른 인권활동들처럼 당사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에서 나아가 당사자 비당사자 할 것 없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나누고 활동으로 만들어낼 것인지를 고민해온 궤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야기의 층을 세분화해 온 시도들이 2018년 트랜스TF 발족의 밑걸음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거고요.

 

계속 두 분의 과거 이야기를 들어봤다면, 지금부터는 현재, 두 분이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해서 들어볼 텐데요. 오늘 이 자리는 <행성인 트랜스 TF팀 가시화의 날>이란 제목을 가지고 있잖아요? 이 행사의 주인공인 트랜스 TF팀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빌리: 네, 맞아요. 오늘 행사 이름이 <행성인 트랜스 TF팀 가시화의 날>이고, 저희 트랜스TF팀이 처음으로 회원분들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발족행사이기도 하구요!

 

 

트랜스TF팀은 사실 올해, 2019년이 아니라 2018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원래 2018년 행성인은 트랜스젠더 의제를 단체 차원에서 논의하자고 결의했었던 맥락이 있습니다. 그리고 행성인이 비상체재로 전환하고 나서 외부 활동은 중단하였지만, 내부에서 지난 활동을 돌아보고, 회원들 간의 소통을 지속적으로 가져가려는 노력이 있었고, 트랜스젠더 의제에 관해서도, 이에 대한 논의를 행성인 내부에서 다루기 시작하고 싶어하는 회원들을 모아 체재 전환 이후 3월 즈음에 초동모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초동모임 이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만남을 가져오며 행성인에서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트랜스젠더 의제들은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논의를 하고, 자료를 모으며 정말 여러 가지 의견들을 주고받고, 마인드맵도 그리고, 회의가 끝나고 같이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면서 친목과 활동을 다져왔습니다. 그리고 작년 회원 집담회에서도 트랜스젠더/젠더퀴어 단위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근데 앞서 푸른님이 말씀하신 활동의 어려움이 저희 팀에게도 적용이 되었지요. 일단 먹고 살 수 있어야 활동을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일단 자신의 현생을 더 돌보기 위해 활동을 쉬게 된 분들도 계시고, 그리고 정말 팀의 주력으로 활동하던, 너무나 소중한 팀원, 모모님을 작년 9월에 잃기도 했어요. 그 분을 떠나보내고, 팀원들이 서로를 추스리고, 다시 재정비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올해 역시 TF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죠.

 

 

사회자: 네, TF팀에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요. 음, 푸른님은 현재 정당에서도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그에 관해서 좀 이야기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푸른: 정의당에 입당하고 성소수자위원회에 들어간 것은 좋았는데, 제가 충남 아산에서 살고 있다 보니, 수도권 위주로 돌아가는 성소수자 인권활동에 참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충남에서 정당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그런 환경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기왕 성소수자의 정치세력화의 길을 선택했다면, 정당에도 기여를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가는 게 있어야 오는게 있지 않겠습니까?

 

열심히 지역활동을 하다 보니, 당에서 월급을 받는 상근자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작년 지방선거 즈음부터 충남도당에서 총무로 일하기 시작했고, 좀 더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성소수자 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내의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 있는 분들을 모아 충남성소수자위원회를 설립하고, 바로 지역 현안이었던 충남인권조례 재제정에 대응했습니다. 당시 기자회견이나 라디오 인터뷰도 하면서, 충남인권조례를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제정시키려 노력했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투쟁하는 과정에서 지역의 시민단체와 어느 정도 관계를 맺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 준비하고 있는 ‘충남 차별금지법제정연대’로 이어지는 동력이 되었다고 자평합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역의 대학 성소수자모임들과도 좀 더 밀접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지역 성소수자 운동의 역량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한 성소수자 운동이 대중의 지지를 받으려면 성소수자 현안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제연 활동을 통해 이 사회에서 차별을 받는 장애인, 청소년, 청년, 이주노동자, 여성, 노동자 운동권과도 연대하면서 스스로의 역량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운동의 설득력이 대중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네. 그렇지요. 활동 의제를 설정하고 연대를 함에 있어, 푸른님도 앞서 말씀하셨다시피, 트랜스젠더퀴어 인권을 다루는 단체는 여러 곳이 있잖아요? 조각보, 여행자, 트랜스해방전선 등. 이런 현재 트랜스젠더퀴어 운동판에서 어떻게 행성인의 트랜스 TF팀에 들어오게 되셨나요?

 

푸른: 지금 여기 토크쇼에도 계신 분께서 – 지금은 잠시 활동을 쉬고 계시지만 – 같이 행성인에서 활동해보지 않겠냐 해서 들어오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트랜스팀에 들어온 것은 물론 트랜스젠더 인권 운동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트랜스젠더가 겪고 있는 차별은 심각합니다. 이번 일요일이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인데요. 성적 자기결정권, 노동권, 의료권을 제한받고 있음은 물론, 일상적인 차별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런 실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사회에 적극적인 해결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주체들이 한데 모여 사회활동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빌리: 저는 2017년부터 행성인의 HIV/AIDS인권팀에서 활동을 해오고 있어요. 근데 그 당시 유학 후에 한국에 들어와서 행성인을 찾아왔을 때 트랜스젠더 관련 활동팀이 없다는 것에 약간 의아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었어요. 근데 그땐 신입이었으니까 뭐 어떻게 팀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생각은 하지 않고 그나마 저와 계속 접점이 있어왔던 HIV/AIDS 인권이슈를 가지고 활동하고자 HIV/AIDS인권팀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행성인에서 트랜스운동을 하는 것은 정말 뭐 별 거 없이, 여기가 내 활동의 본거지니까, 여기서도 트랜스젠더, 젠더퀴어에 대한 활동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기도 했고, 마침 비슷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하길래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행성인의 특수성이 있다면, 바로 당사자와 비당사자와의 끈끈한 연대가 아닐까 생각해요. 제가 활동한 HIV/AIDS 인권팀은 HIV감염인 인권 이슈에 관심있는 감염인과 비감염인 같이 활동을 하거든요. 그러면서 생기는 유대감은 결국 HIV관련 의제가 감염인에게만 결부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인권의 의제라는 생각, 관점을 공유하게 됨으로 나아가게 만들거든요. 비감염인에서 예비감염인으로, HIV는 우리 모두 걸릴 수 있는 질병으로 타자화보다는 우리가 함께 개선해나가야 할 인권 이슈이고, 이에 더 차별받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것. 트랜스젠더와 젠더퀴어 의제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사실 더 넓게 보자면, 성적 지향에 있어서의 소수자들은 이성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잖아요? 이렇게 성적 지향의 소수자들이 탈피하는 이성애 중심주의는 사실상 성별이분법의 제도이잖아요. 분명히 우리가 아는 성별이분법적 체계에서 여성은 남성을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남성은 여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즉 성별 이분법에는 이성애 중심주의 역시 포함된다는 거에요. 그럼 성적 지향이 이를 위배하는 여기 계신 많은 분들도 사실 트랜스젠더/젠더퀴어의 가장 큰 의제인 ‘성별 이분법 타파’에 동참하고 계신게 아닐까요? 이런 인식을 나누면서 당사자/비당사자의 갈라치기를 넘어서서, 연대와 신뢰를 기반으로 한 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사회자: 네. 현재 트랜스 운동판 안에서의 행성인 트랜스팀의 입지를 다지는게 중요하고, 두 분의 의견이 잘 반영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나아가서, 이 활동을 시작하는데 있어 어떤 고민들이 있으신가요?

 

 

푸른: 트랜스젠더 운동권은 게이나 레즈비언 운동권에 비해 활동역량이 많이 부족합니다. 트랜스젠더가 처한 문제들 때문에 활동에 관심이 있어도 활동할 여유를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수입이 안정적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활동할 수 있지만, 예전에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는 세상과 연을 끊고 살 때도 있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행성인은 성소수자 단체들 중에선 역사도 있고, 재정도 나름 안정적인 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행성인 내에 비스켓이라는 소모임도 있었던 걸로 보아, 행성인 내부에도 트랜스인권활동에 관심 있는 분들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 역량들을 모아 인권활동으로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트랜스인권팀은 트랜스젠더 당사자만 받지는 않습니다. 이미 팀 내에도 비당사자가 여럿 있고요. 트랜스인권에 관심이 있는 엘라이에게도 얼마든지 열려있습니다. 또한 꼭 인권활동을 하겠다는 각오를 해야만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트랜스젠더가 어떤 차별을 받는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궁금하신 분들도 팀 활동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알아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빌리: 푸른님 말씀해주신 그대로에요. 현재 저희 팀 인원이 4명이거든요. 그 중 2명이 여기 앞에 앉아있구요. 그리고 이제 막 트랜스 의제를 가지고 활동을 시작하려고 함에 있어 동력도, 인력도 많이 부족한 상황이에요. 아마 이런 게 풍족했더라면 올해 TF체재를 끌고가진 않았겠지요. 그러니 여러분의 많은 관심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해요! 같이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활동을 모색해보고 있으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사회자: 어느덧 마지막 질문인데요, TF활동을 하면서 하고 싶은 활동은 무엇이 있으신가요?

 

푸른: 트랜스인권팀에서는 트랜스젠더, 더 나아가 젠더퀴어의 인권까지 포함하는 활동을 하려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TF팀이니까 너무 욕심을 내기보다는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 하나 해나가고 싶습니다. 팀 내부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팀의 역량을 키우고, 트랜스인권을 주제로 행성인 회원 교육이 이루어질 때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또한 서울퀴어문화축제 부스에 행성인 소속으로 참가하여 트랜스젠더 비병리화에 대한 캠페인을 해보면 어떨까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새롭게 합류한 회원들과 소풍을 가서 친목도 다져보려 합니다.

 

그렇게 활동역량을 키워나가면서, 종래에는 트랜스젠더의 인권역량을 하나로 묶어내는 역할도 하고 싶습니다. 아까 제가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지요? 현재 조각보, 여행자, 트랜스해방전선이 트랜스인권 쪽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팀 활동을 하면서 이들 단체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연대하면서, 운동의 에너지를 하나로 묶는 것을 제 개인적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빌리: 푸른님이 말씀하신 대로, 다른 트랜스 단체들과의 소통체계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서로가 활동을 함에 있어 같은 일을 필요 이상 반복하지 않도록, 서로의 자리를 응원하는 관계들을 만들어 내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저희 팀원들도 일요일에 있는 젠더담론 컨퍼런스에 참가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행성인 내부에서는, 저희의 활동을 통해 트랜스젠더 의제와의 접점이 넓어지는 회원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저희 트랜스TF가 있게 된 여러 맥락이 있지만, 그 중 오늘 다 말하지 못한 부분은, 작년 행성인이 단체 문화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나왔던 지적 중 하나인데요, 바로 ‘행성인이 과연 시스젠더가 아닌 회원들에게 안전하고 열린 공간이었냐는 것이었냐?’입니다. 이에 대해 각각의 회원 간의 온도 차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간극과 온도 차를 줄여보는 활동도 여러 교육이나 지금과 같은 행사를 통해 가능하지 않을까 고민해봅니다.

 

 

트랜스 TF팀에 관심 있는 분은 행성인 메일 lgbtpride@empas.com으로 연락 주세요!!

 

 

 

 

 

댓글을 남겨주세요

Name *

Password *

Link (Your Homepage or Blog)

Comment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