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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활동 후기

젠더담론 컨퍼런스 1부 후기 - 세상은 생각보다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많다.

by 행성인 2019. 4. 28.

 

 

작성자: 빌리 (트랜스인권TF팀)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애를 써가며 굳이 구분하고 나누려 해온 것은 아닐까?

 

[제 1회 젠더담론 컨퍼런스]의 1부, ‘젠더란 무엇인가’에서는 퀴어 활동에서 들어 온 젠더를 정의하는 그 수 많은 말들을 한꺼번에 모아놓고, 그 역사적 맥락을 짚어주었다 (마치 사혼의 젠더구슬의 조각들을 모으는 것처럼...). 한국이 성소수자에 대해 너무 무지한 나머지, ‘젠더’란 개념을 ‘생물학적 섹스’에 빗대어 둘의 차이를 살짝 설명하고 넘어가는 것으로 그 소개를 마칠 수밖에 없었던 수 많은 강연들이 생각났다. 성소수자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면서도, 설명하기에는 가장 어려운 개념, 젠더. 이 단어가 가진 복잡하고 다층적인 역사를 풀어주었던 루인님과 채윤님께 감사한 자리였다.

 

성소수자 운동을 하면서 흔히 듣는 말 중에는 ‘성별이분법에 저항한다’가 있다. 그리고 나는 막연하게 ‘우리를 ‘여자같음’과 ‘남자같음’에 묶어놓는 사회의 규범에 당연히 저항해야지!’라고 생각해왔었다. 그런 나에게 젠더담론 컨퍼런스 1부는 이게 얼마나 야트막한 운동적 사고인지를 알려주었다. 사람의 성별을 말함에 있어서 ‘젠더’라는 단어가 나오게 된 계기, 그리고 여러 학계로 해당 단어가 퍼져 나가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화되어가는 뜻과 사용을 짚으면서 루인님은 ‘섹스’는 불가항적이고 불변적인 ‘그릇’이고 ‘젠더’는 섹스라는 그릇에 담기는, 가변적인,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상(象)의 성격을 가진 것이라는, 우리가 현재 흔히 알고 있는 젠더와 섹스의 관계와 뜻을 설명했다. 그러고는 그는 무척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는데, 왜 섹스는 불변적인 것이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SNS에 소개된 한 논문을 통해 다음의 인용구를 읽게 되었다: 페미니즘에서 “왜 인간은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만 태어난다거나, 여성으로 태어난다는 점은 ‘과학적/생물학적 사실’이라는 인식은 질문되지 않거나 누락되는지를 집요하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루인, 2018, 177쪽[1]; 이효민, 2019[2]에서 재인용).

 

젠더와 섹스를 구분 짓고 젠더의 가변성을 내세우는 것은 초창기 트랜스젠더 의제였다. 젠더를 넘나들었다는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뛰어넘는 것과 뛰어넘어지는 것이 필요했고, 전자를 젠더, 후자를 섹스로 많이들 채택하여 설명하였다. 이는 당시 의학적 지식이기도 하였고, 이미 대중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 지식 – 이분법적 섹스 – 에 하나의 층위 – 젠더 - 만 더하면 되는 논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지식이 널리 퍼진 지금, 위의 인용구는 우리를 다그친다. 젠더는 스펙트럼이라 인식하면서, 우리는 왜 아직도 섹스는 불변적이고 이분법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섹스’의 가변성과 다양성을 논함에 있어 우리에겐 수술과 호르몬치료 등 성별정정/회복을 위한 의료적 조치의 발달로 인한 쾌거와 성염색체의 규범을 넘어선 ‘섹스’의 다양성에 대한 연구가 있다. 그리고 생을 살아감에 있어 우리의 몸과 생체지표는 지속적으로 변화해가고 ‘섹스’에 대한 지표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젠더도 젠더 역할의 이분법을 논하며 젠더 표현 방식의 다양성을 이해하게 되었고, 젠더 이분법에 저항하게 되었듯이, ‘섹스’이분법에 갇혀왔던 우리는 ‘섹스’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기에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트랜스젠더/젠더퀴어로 불리는 이들은 ‘섹스’와 젠더의 이분법적 분류체계의 오류를 수면 위로 드러낸다. 하지만, 꼭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 저항하기 위해서 트랜스젠더/젠더퀴어일 필요는 없다. 성별 이분법은 이성애를 규범화한다. 동성을 좋아하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성적 끌림과 정서적 끌림에 여러 조건들이 붙는, 혹은 좋아하는 상대를 찾음에 있어 성별/젠더가 별 상관이 없는 우리들은, 그리고 이런 우리들을 비정상이 아니라 다름으로 인식하는 그 모든 사람들은 이미 이분법에 저항하고 있다. 그러니 이미 하고 있는 저항을 좀 더 하자고 말하고 싶다. 이 저항 전선의 선봉에는 언제나 그랬듯 젠더를 가지고 노는 트랜스젠더/젠더퀴어들이 있다. 규범으로부터의 해방에 있어서는 항상 앞서 나갔던 이들의 목소리를 잘 듣고 실천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어떤 운동의 전략이 필요할지 고민하게 된다.

 

[1] 루인 (2018). 젠더로 경합/불화하는 정치학. <여/성이론>, 38호, 101-131.

[2] 이효민 (2019). 페미니즘 정치학의 급진적 재구성: 한국 ‘TERF’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석사졸업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