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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

[회원 에세이] 퀴어는 부끄러운 게 아냐 – 내 안의 수치심 넘어서기

by 행성인 2023.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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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shame)이란 감정은 우리에게 언제부터 생겼을까? 최근 이걸 자주 고민했다. 어릴 때의 나는 내성적이고, 말을 잘 못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최근에는 이게 꼭 내가 원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절대적인 기준이 엄격한 편은 아니었으나, 나의 보호자였던 부모님은 나에게 허락되는 것과 아닌 것을 확실하게 구분했다. 그리고 내가 기준을 벗어났을 때마다 반복되는 메세지는 그건 부끄러운 짓이고, 다른 사람들이 싫어할 거야였다. 이런 메시지를 받게 되는 행동의 범위는 꽤 넓었는데, 인터넷으로 엽기적이거나 야한 컨텐츠를 보는 일부터-지금 궁금한 것은, 동성애 컨텐츠는 엽기에 들어갔을까, 아니면 야한컨텐츠에 들어갔을까?- 다른 사람과 싸우는 일, 그리고 게임을 하고 만화나 로맨스 소설을 읽는 것까지, 부모님이 생각하시기에 바른 생활이 아닌 거의 모든 것이 부끄러운 일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물론 나는 깔끔하게 그 모든 경고를 무시했다. 만화는 영원한 내 친구였고, 게임에서 만난 친구들과 놀러다녔으며, ‘야한컨텐츠는 꾸준히 몰래 봤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태연하게 한다는 것이 나를 수치심에서 자유롭게 해 주지는 않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1학년 때 꼭 붙어 다니던 짝궁 남자아이 이후로 처음으로 누군가와 단짝이 되고 싶다는 강한 마음을 가졌다. 그런데 이번에 괜히 신경이 쓰이고 관심이 생기는 사람은 같은 반 여자 친구였다.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 친구 앞에 가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학교 이야기 조금, 같은 반 친구들 이야기 조금. 그러고 나면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내 가족, 내 친구들, 내 관심사 같은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너무 부끄러웠다. 수치스러웠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내 삶은 관심 있는 사람에게 알리고 공유하기에 부끄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고, 너랑 친해지고 싶다는 관심을 표현하는 것은 절대로 누군가가 알아서는 안 되고, 알게 된다면 부정하고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일로 느껴졌던 것이다. 이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이 모두 나를 싫어할 것만 같았고 두려웠다.

 

같은 성별의 누군가에게 이런 관심을 갖는 일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직접적인 메시지는 특별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끊임없이 아주 선명하게 전해졌던 메시지 중 하나였다. 당시 유행하던(안타깝게도, 내가 살던 지역에서는 유행한 적이 없다. 너무 억울하고 아쉽다.) 팬픽이반에 대한 가정통신문, 부모님이 가끔 데려갔던 교회에서 들은 이야기들, 동성애를 다룬 컨텐츠에 대한 부모님의 강한 거부감과 경고들

 

지금도 가끔 생각해 본다. 그 친구가 남자였다면, 나는 덜 부끄러워하고 좀 더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을까? 그 때마다의 결론은 늘 같다. ‘, 남자였으면 그렇게 관심 안 가졌을 거 같은데아니 하지만 정말로’. 그러다가 다시 그래도 걔가 남자애였다면…’으로 빙글빙글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중학교 때부터 대학에 들어간 이후까지 내 마음은 언제나 숨겨야 하는 대상이었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더라도 좋은 친구, 좋은 후배, 좋은 지인에서 멈추는 연습만이 반복되었다. 나는 동성애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성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는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그랬다. 내가 가진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거나, ‘그게 어때서?’라고 해 주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이성적인 생각과 관계없이 오랫동안 무의식 깊은 곳에서 자신의 관심사를 부끄러운 일이라고 받아들여 왔던 사람이 스스로 그 함정에서 벗어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다.

 

 

내가 조금씩 바뀌게 된 것은 서울에서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였다. 처음 몇 년간은 살아남기 바빠서, 그리고 딱히 좋아하는 사람도 생기지 않아서 완전히 잊고 있던 감정은 몇 년과 몇 번의 밍숭맹숭한 남자친구가 지나간 뒤 오래된 편지를 서랍장에서 꺼내듯 되살아났다. 나는 벌벌 떨면서 가짜 나이와 가짜 사는 곳으로 모 어플의 계정을 만들었고, 두려워하면서 첫 번개에 나갔다.

 

첫 번개는 대실패였다. 제대로 적응하지도 못했고, 사람들과 대화도 거의 못 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대성공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시 탐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뒤에도 여러 번 번개에 나갔고, 갈수록 적응해 나가면서 나는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법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되었다. 서투르기 짝이 없었지만 반복할수록 나아졌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며 나는 어릴 때부터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러지 못했던 내 정체성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나는 (좋은) 섹스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성적인 관심이 왕성한 사람이었다. 이런 나에 대한 수치심으로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즐거움을 놓치고 살아왔던 것이다. 나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즐겁고, 스스로에게 당당해지게 된다.

 

최근 인터넷에 떠도는 BDSM 테스트를 해 봤는데, 설문지를 풀면서 나는 여전히 누군가가 나에게 수치를 주는것을 견디기 어려워하며, 거기에서 즐거움을 얻지는 못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아직도 무의식적인 수치심은 내 마음 속에 깊이 박혀 있고, 짧은 시간 안에 지워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나는 이제 내가 원하는 걸 알고,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언젠가는 내가 풀었던 BDSM 테스트 설문처럼 내게도 수치심이 견딜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이 되는 날이 올까? 기다리는 것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