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bber Lee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하루하루 노동하고 힘든 어느 날, 트위터에 지인에게 12월 부산 범일동(그 범일동이 맞다)에 위치한 타이트홀 클럽에서 SM테마로 이벤트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 귀가 솔깃해졌다.
한국 SM이벤트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많이들 하는 도그마스크, 하네스, 수족갑은 기본이겠지?
“그래 진정한 SM의상이 무엇인지 보여주자”
조직가의 역량을 발휘하자. 혼자 가기 적적하니 사람들을 모았다. 아는 지인을 모아서 각자 특출난 기량을 발휘하여 행사 참여를 준비했다.
기차표와 숙박 장소를 알아보던 중, 때마침 태국에서 주문한 옷이 도착했다. 새 코스튬을 입고 한국 무대에 '데뷔'한다는 생각을 하니 긴장이 많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12월 첫째주 토요일, 아침 업무를 대강 마무리하고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했다. 타이틀홀에서 가까운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본격적으로 준비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옷을 세척하고 광택을 낸다. 먼저 온 일행들이랑 같이 저녁을 먹고 통성명을 했다.
정말 오랜만에 가는 클럽이다. 그것이 마침 SM이벤트라니!! 대체 어떻게 살아온 것인가를 잠시 생각하며 격하게 스스로를 칭찬한다.
긴장 반 기대 반으로 드디어 출발-
타이틀홀에 도착해 지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다. 시끄러운 음악. 어두운 조명. 많은 사람들.
입고온 옷을 벗고 준비된 의상을 입고 자리에 착석했다.
우와 그옷 어디에서 구입했어요?
멋진데요!
만져봐도 되나요?
역시나 이목이 집중되었다. 서로 자연스럽게 인사 하고 이야기도 나눈다.
중간에 사진작가 김민수님이랑 자성대(역시 그 자성대다)에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야외에서 사진을 찍은 적이 몆 번 있지만, 전문가의 감각이 담긴 작업은 처음이다. 처음 알았는데 자성대는 야노와 크루징의 성지다. 경복궁에 한복 입고가듯, 퀴어 조상님들의 혼이 깃든 자성대에 정갈하게 의복 차려입고 올라왔다는 걸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얻어 걸린 느낌이지만 영광된 마음과 함께 진심으로 준비해간 나를 칭찬한다.
사진을 찍고 다시 클럽에 돌아와서 오늘중 누가 가장 컨셉에 맞게 의상을 입었는지 투표를 했다.
(((두구두구))
1등!
생각지도 못한 결과다. 당시엔 엄청 부끄러워서 쑥스러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신기하고 재밌다. 언제 쓸지 모르지만 페티쉬 커리어에 새로운 한 줄이 채워졌다.
외국으로만 다니면서 한국에는 씬이 좁다고 이야기해왔는데, 등잔 밑이 어두웠다. 한국클럽 SM 이벤트에 참여해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어 뜻깊었다. 물론 나에게는 러버를 알리기 위해 원정을 갔다는 큰 목적이 있었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호의와 호기심을 가지며 관심을 가져준 것이 뿌듯하다.
앞으로도 다양한 페티쉬 성향자들의 활동을 기대하면서, 지금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후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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