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동(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은은한 빛의 한복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유엔의 날을 맞이하여 학생들이 다양한 나라의 옷을 입고 등교했습니다. 인보는 한복을 입었답니다. 찰스 아빠가 아이의 메이크업을 해주고 태극기가 영어로 새겨진 어깨띠를 메주 었습니다.
한국의 영문 국가명을 찾아 넣을 때 South Korea나 Republic of Korea로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South Korea 보다는 저는 그냥 Korea가 더 좋습니다. 분단을 넘어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는 통일된 나라 하나의 코리아가 되길 꿈꿉니다.

식사사 차리기

어느 날 점심 시간이었습니다. “인보야 밥 먹자”하고 아이를 불렀습니다. 밥그룻과 수저 세트를 식탁에 올려놓고 잠시 주방에서 일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세상에나, 아이가 식탁에 그릇과 수저와 저분을 나란하게 상을 차려놓았더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도 얼마 안 있으면 설거지도 거들어 줄 것 같아요.
저희 집에는 개미가 아주 많습니다. 완전 박멸이 어려워 위험하지 않으면 공생합니다. 아이가 요구르트나 요거트 같은 단 것을 먹고 나면 저는 싱크대 음식물 거름망에 버립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가 간식을 먹고 난 후 스스로 싱크대에 버리기 시작했네요. 이렇듯 아이는 생활 습관을 하나씩 익히면서 커나갑니다.
어미 닭이 새끼들을 품다

비 오는 어느날 처마 밑으로 비를 피하는 어미 닭과 병아리 가족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미가 새끼들을 품어 주고 있더라고요.
저는 가톨릭 성가 중에 ‘주 날개 밑’이라는 성가를 무척 좋아합니다. 주님의 품 안에서 편히 쉬고 슬픈 마음을 위로받으며 안위와 복을 얻는다는 가사입니다. 세상의 풍파에 시달려 내 삶이 고단할 때 마음을 평화롭게 치유해 주는 아름다운 성가입니다.
저는 어미 닭의 품어주는 사랑을 닮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를 늘 위험한 환경에서 안전하도록 지켜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아프거나 (아빠에게 야단을 맞고) 울면서 “엄마 안아주세요”하고 달려옵니다. 그러면 저는 안아서 ‘사랑해요’ 노래를 불러주고 토닥여주곤 합니다. 아이에게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어미 닭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부모 품에서 사랑을 받고, 더불어 부모 슬하에서 자라나는 우리 딸내미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면 좋을까?’를 자문해 보았습니다. 정신과 마음 건강 간호학을 공부하는 저는 우리 가족의 마음가짐을 새기고 싶어졌습니다.
가훈(家訓): 우리 집의 마음가짐

결혼 후 남편과 단 둘 일 때는 가훈이란 단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배우자는 양가의 서로 다른 가풍 안에서 성장하여 여러 모로 차이가 많습니다(특히 한국과 필리핀 간에 다른 생활 습관과 행동 방식으로 인해 많이 타시락 타시락 다툽니다. 제 나이 쉰 둘, 남편 나이 마흔 넷에 결혼을 했으니 이미 습관이 바위보다 단단해졌지요. 가끔 하는 농담으로 '사랑과 전쟁'을 백편도 넘게 찍은듯해요.)
그래서 말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좋은 품성을 갖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통해 교육의 중요성을 생각하니 아이는 저희 부부에게 경험을 통한 깨달음과 지혜를 안겨주는 스승이기도 합니다.
필리핀의 이민 생활 가운데, 제가 평소에 중요하다고 사색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 친절
법정 스님의 말씀 가운데 저의 일상에서 자주 되새기는 말은 ‘친절’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친절은 좋은 선물이지요. 그러나 가끔 남편과 다투고 나면 정말 화가 많이 납니다. 결코 끝나지 않는 부부싸움 때문에 화가 올라옵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좋게 대할 수가 없지요.
아이가 속상함을 안겨줄 때도 있어요. 이럴 때면 ‘친절하게’라는 말을 되뇌이며 손으로 가슴을 쓰다듬습니다. 친절하게 대하자고 다짐합니다. 친절은 가족뿐 아니라 친구와 지인 그리고 이웃과의 인간관계에 좋은 약이지요.
- 너그러움(관대寬大)
가족 간에 실수가 있거나 고의로 힘겹게 할 때가 있지요. 그야말로 화(火)가 치밀어 오릅니다. 화가 반복되고 지속되면 화병(火病)을 앓게 되지요. 울화로 힘든 저의 마음을 ‘너그럽게’로 다독이면 마음이 넉넉해져 남편과 딸내미를 보다 부드럽게 대하게 됩니다.
- 고요하게(정중동, 靜中動)
저는 가끔 행동이 급해지고 점점 빨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국 사람답게(?) 조급한 마음으로 빨리빨리 일을 처리하려는 것이지요.
직업적으로 간호사의 완벽한 일처리 방식을 집에서 할 때가 많습니다. 가정에서 강박적인 행동을 취할 때가 있는데 이로 인해 남편이 많이 힘들어합니다. 하물며 어린 딸내미에게도 ‘이래라 저래라’ 재촉합니다.
독이 되는 행동을 고치기 위해 나름의 인지행동 약을 개발했습니다. 다름 아닌 ‘정중동으로 고요하게’라고 주문을 외우고 나면 저의 행동이 고요해집니다. 정서적으로 차분함을 가져다주는 ‘고요하게’란 말을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 자긍심(自矜心, Pride)
자긍심의 사전적 정의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반동성애 집단은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며 존재의 가치를 폄훼합니다. 그러나 나의 자긍심은 이들의 만행을 한 줌 재로 태워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이성애 중심적이고 우월적인 사회적 기준은 퀴어에게 백해무익한 잣대입니다. 따라서 저는 철저하게 퀴어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퀴어에게 내적 자긍심이 필요합니다.
저의 자긍심은 ‘언제든,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나의 존재를 숨기거나 거짓말하지 않고 당당하게 ‘나는 여기동, 동성애자, 퀴어’라고 드러내는데 커다란 용기를 불어넣어줍니다. 자긍심을 바탕으로 저의 이력서의 신상표기란에 ‘젠더: 동성애자’라는 간판을 걸어 (개인이나 기관 또는 단체가) 저의 존재를 파악하도록 공지합니다(즉, 당신이 반동성애적이면 나랑 함께할 수 없다고 못을 박는 겁니다.).

우리 딸아이가 성장하면서 퀴어한 가족을 소개할 날들이 올 것입니다. 부모가 동성결혼 커플이라는 것과 자신이 입양되어 성장한 딸내미라는 것을 설명해야 시간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가 커밍아웃할 때 주저하거나 위축되어 숨기거나 거짓말하지 않고 자긍심을 발휘해서 용감하게 드러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동성결혼 한 게이 커플이야. 나를 입양하여 우리 집은 나의 이름처럼 레인보우 패밀리(Rainbow Family)가 되었어. 나는 나를 사랑해 주시는 부모님이 자랑스러워.”라고요.
저는 평생 품어온 자긍심이 가장 강력한 힘이란 것을 알게 되었어요.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지식/인지와 같은) ‘아는 것이 힘(Knowledge is Power)이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저는 퀴어답게 가슴에 새깁니다, ‘자긍심이 힘이다(Pride is power)’라는 제 삶의 명언을.
제가 좋아하는 단어를 모아 보니 마음가짐(가훈家訓)의 틀이 짜졌습니다.
- 자긍심(自矜心, Pride)
- 친절하게
- 너그럽게(마음을 관대寬大하게)
- 고요하게(정중靜中 행동行動)
새해가 밝으면 이 마음가짐의 틀을 액자로 만들어 집 안에 떡하니 걸어 놓으려 합니다. 새해마다 설정하는 결심에 보태어 바라보고 또 바라보겠습니다.
행성인 가족 여러분,
추운 날씨 그리고 모임과 행사가 많은 연말에
건강 잘 챙기셔요. 12월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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