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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코코넛의 눈코입귀

[코코넛의 눈코입귀] 나는 활동하는 사람입니다

by 행성인 2025. 12. 23.

코코넛 (행성인 HIV/AIDS 인권팀)

 

 

연말이다. 작년 연말과 비교하면 그래도 상대적으로 평온한 나날을 보내지 않나 싶다. 일단 당장 탄핵할 대통령이 없는 것만도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한 해를 바쁘지 않게 산 것은 아니다. 학업과 알바, 단체활동, 그리고 지난달 초부터 시작한 일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다 보니 어느새 한 해가 거의 다 끝나 간다. 크리스마스고 연말인데 연휴도 연말연시 느낌도 이렇게 들지 않는 해가 있었나 싶다. 작년 이맘때는 동지들과 광장에서 매일 같이 깃발을 들고 행진하느라 감기 몸살이 떨어지지 않았다. 작년의 연대의 기억이 겹치는 동시에 계엄의 충격이 1년째 가시지 않는 게 뒤숭숭한 연말에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연말은 연말이니까. 지난 1년 동안 내가 뭘 하고 살았나 돌아봤는데, ‘활동가라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제작년 늦여름, 그러니까 내가 기나긴 디나이얼 기간을 끝내고 퀴어 커뮤니티에 나온 지 불과 두세 달 만에 행성인 회원이 되고 시작한 활동은 오지랖 넓은 성격을 반영하듯 조금씩 반경을 넓혀 나갔다. 작년 하반기에 청년성소수자문화연대 큐사인의 실무단으로 합류하고 불과 세 달 만에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면서, 큐사인 소속으로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에 들어가고 무지개행동연대단체의 활동가들과 함께 활동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그러면서 HIV/AIDS 인권행동 알의 인권팀, 그리고 몇 년 전부터 당적을 두고 활동하던 진보 정당의 청년당 운영위원회에도 합류했고 저번 달부터는 해당 정당의 사무처에서 상근 활동을 시작했다.

 

모든 활동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위해 논문을 쓰고, (상근을 시작하기 전에는) 생계를 위해 운동을 하던 헬스장에서 알바를 했다. 정말 정신없는 한 해였는데, 그러면서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클럽도 가고, 어플도 돌리고, 연애도 했다. 내가 봐도 번아웃이 오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는데, 그럼 연말을 맞아서 지난 1년 동안 했던 모든 활동 중 가장 나의 기억에 강하게 남은 활동을 몇 가지 뽑아 돌아보고, 전반적으로 올 한 해가 활동하는 사람으로서의 나에게 어떻게 남았는지 정리해 보려고 한다. 후술할 활동들에 매기는 번호나 순서는 해당 활동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했는가의 순위와는 관련이 없음을 미리 밝혀 둔다.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

 

작년의 끝과 올해의 시작을 장식한 것은 공동행동이 아니었나 싶다. 작년 크리스마스 당일에도 인권위원회 앞에서 루돌프 의상을 입고 집회를 했던 기억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몇 년 전 박근혜 탄핵 시국에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해당 의제에 관심이 크지 않았고, 집회에도 열심히 참여하지 못했다는 부채감에 더더욱 열심히 광장으로 나가지 않았나 싶다. 박근혜 탄핵 시국 당시 광장에 만연했던 여성 혐오나 지워진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행성인에 가입하고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야 처음 들었기 때문에, 이번 광장에서는 그런 혐오가 보이지 않도록 일조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무지개존에서 많은 활동가들과 시민을 만나고, 행성인에서 한동안 마주칠 일이 뜸했던 사람들도 집회를 빌미 삼아 만나고, 활동 실무와 운영에 대해서도 많이 보고 배우는 기회였다. 광장에서 성소수자와 앨라이 시민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데에 일조했다는 보람, 동시에 탄핵 이후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않는 사회에 대한 약간의 무력함이 공존하는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러고 있다. 일 년이 지나 다시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면 종종, 이렇게 추위를 잘 타는 내가 어떻게 지난 광장에는 매일 같이 나가서 하루 종일 있었는지 믿기지 않는다. 한강진에서 눈을 맞아 가며 늦은 밤까지 집회에 참여하다 큐사인 깃대를 그대로 멘 채로 이태원까지 걸어가 클럽에서 밤샌 게 11개월 전이 아니고 전생 같다. 광장에서 만나는 성소수자 시민들의 절박함이 그만큼 나에게 크게 다가왔던 것도 있고, 큐사인 소속으로 공동행동 안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지 않았나 싶다.

 

 

공동행동에서 활동한 것이 활동가로서뿐 아니라 퀴어로서도 큰 변화의 기점이 되었다. 탄핵 시국 초기에 발언 무대에서 첫 커밍아웃을 하고 당시에 알바하던 매장 사람들과 학교 사람들에게도 발언 영상이 닿으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거의 오픈리 퀴어인 삶을 살게 되었다. 각종 매체에 성소수자 활동가로서 사진과 실명이 실리는 것도 꺼리지 않게 되었다. 행성인이나 큐사인 외 다른 단체 활동가들과 만날 일이 많아지면서 친해지는 활동가들도 생겼고, 단체 실무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는 기회가 생겼다. 무엇보다도 공동행동 안에서 큰 역할이 아니더라도 매일, 혹은 매주 광장에서 무지개존을 함께 운영하면서 단체에 소속된 활동가로서, 그리고 평등이라는 의제에 깊이 공감하는 성소수자 개인으로서 어떤 활동을 어떻게 할지 방향을 잡고 동력을 얻은 것 같다. 광장에 나가느라 감기 몸살이 5월까지 떨어지지 않았지만, 추위에 떨며 무지개 손피켓을 들고 있던 시민들의 염원과 간절함은 아직까지 강렬하게 남아 있다.

 

 

졸업 논문

 

논문을 활동가 포지션으로 쓴 건 아니고, 졸업과 학사학위 취득을 위해 쓴 거긴 하지만, 그래도 올 하반기에 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 일이기 때문에 넣었다. 졸업이 임박하기에 웹진 지면을 빌려 밝히자면, 나는 가톨릭 계열의 대학교에서 가톨릭 신학을 전공했다. 학위 논문 주제는 트랜스젠더 가톨릭 신자들의 몸에 대한 인식과 영성의 상호 영향이었다.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분위기의 학교에서 트랜스젠더 영성을 주제로 한 논문을 지도해 주실 교수님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을 거라 예상했는데, 다행히 대학원에 출강 오시는 외부 교수님 중 페미니즘 신학을 연구한 교수님을 찾아가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논문을 쓰는 데는 크게 세 가지 난관이 있었다. 첫 번째는 논문의 방향성과 결론을 설정해 두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기존에 있는 신학 문헌 중 논문을 뒷받침할 자료를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마지막 난관은 인터뷰할 가톨릭 신자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을 찾는 것이었다. 두 번째 난관에 대해서는, 교수님께서 논문 주제를 듣자마자 바로 참고할 수 있는 자료를 말씀해 주셔서 그렇게 어렵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다. 첫 번째 난관에 대해서는, 교수님께서 제시해 주신 논문의 방향과 내가 꼭 쓰고 싶었던 결론을 가지고 논문을 집필하며 조율을 거치니 꽤 나쁘지 않은 논리의 과정을 성립할 수 있었다.

 

사실 세 번째 난관이 가장 어려웠다. 동시에 그건 내가 이 논문을 꼭 쓰고 싶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석사나 박사도 아니고 학사 논문에서 인터뷰까지 하는 것이 쓸데없이 집필 과정 규모를 키우고 품을 많이 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성소수자나 페미니즘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말하기 힘든 분위기의 학교에서 트랜스젠더 영성을 주제로 논문을 써서 학위를 받고 싶다는 일종의 반항심 같은 것이 있었고, 그리스도교의 혐오에 상처를 받고 교회 공동체를 떠나거나, 공동체에서 배척당하거나, 신앙을 잃은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워낙 많은지라 그런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논문 집필에 대한 동기와 원동력도 많이 얻었던 것 같다.

 

인터뷰 대상자로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와 트랜지션 경험이 있는 바이너리 트랜스젠더를 만나보려 했다. 논바이너리는 비교적 빨리, 쉽게 구한 편이었는데 바이너리 트랜스젠더, 그러니까 트랜스여성이나 남성 중 가톨릭 신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거나 기도 등의 신앙생활을 지속하는 사람들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국은 시간에 쫓겨서 논바이너리만 인터뷰해서 논문을 집필한 것이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트랜지션을 경험한 가톨릭 신자들을 만나기 어려웠다는 사실 자체가 가톨릭 교회 공동체 안에서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겪는 배척을 방증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교수님께서는 논문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셨고, 비록 학사 논문이지만 한국에서 집필된 가톨릭 신학 논문 중 트랜스젠더 영성을 다룬 사례가 처음이라고 알고 있어서, 나름대로 보람도 남는다. 앞으로는 한국의 가톨릭 신학계에도 트랜스젠더 연구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나중에 여력과 시간이 된다면 더 깊은 연구를 하고 싶다는 미련을 품어 본다.

 

 

오늘, 섹스하고 싶은 당신을 위한 게이 섹스 안내서

 

어쩌다 보니까 지금 돌아보는 활동을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데, ‘게이 섹스 안내서는 올해 상반기부터 HIV/AIDS인권팀에서 기획하고 가장 최근에 결과물을 낸 활동이다. 지난달 웹진에서 상세하게 말할 기회가 있었으니 기획과 준비 과정에서 느낀 점은 생략하고, 종로와 이태원의 업소들을 돌며 포스터를 붙이면서 느꼈던 점들을 몇 가지 짚어 보려고 한다.

 

 

생각보다 우리를 친절하게 맞아 주시고 관심을 갖는 업소들이 꽤 많았다. 모 드랙 클럽을 방문했을 때는 사장님께서 화장실 안에 가장 잘 보이는 위치가 어디인지 직접 안내해 주시고, 공연 준비 중이었던 드랙퀸 분들도 오가면서 우리의 포스터를 관심 있게 쳐다보기도 했다. 규모도 크고 유명한 게이 클럽들에서도 사장님이 친절하게 어떻게 포스터를 붙일지, 어디에 붙여야 잘 보이는지 알려 주기도 했다.(포스터를 붙이고 밤에 클럽에서 술을 사 마시고 신나게 노는 것으로 보답해 드렸다.) 좋은 일 한다고 격려해 주시며 음료수를 챙겨 주는 클럽 사장님도 계셨다. 종로 게이 술집들의 사장님들도 인권단체에서 캠페인 포스터를 붙이러 나오는 것에 익숙하셨는지 우리를 반갑게 맞고 격려해 주셨다.

 

물론 떨떠름하게 반응한 업소들도 있었고,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업소도 있었지만, 우리를 환대해준 업소들을 기억하며 앞으로도 HIV/AIDS 인권팀의 오프라인 캠페인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인권팀 창설 이후 정말 오랜만에 업소를 도는 오프라인 캠페인을 진행한 것으로 들었다. 이렇게 종로와 이태원에 직접 나와서 업소들과 소통하는 네트워킹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팀에서도 오프라인 공간의 데이터를 더 많이 수집하고 추후에 진행할 캠페인과 활동을 위한 기틀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프라인 캠페인은 꽤 만족스럽게 끝났지만,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계속 HIV/AIDS 인권팀 활동을 하면서 더 많은 의제를 가지고 퀴어/게이 커뮤니티에 가 닿을 기회를 지속적으로 만들고 싶다.

 

 

 

나열한 활동 말고도 지난 1년 동안 정말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바쁘게 살면서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다. 진보 정당의 사무처에서 활동비를 받는 전업 활동가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전부터 여러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가진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물리적으로 바쁘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데 소홀했던 적도 있다. 번 아웃이 올 뻔했고 활동과 학업, 알바로 피로가 누적되어 몸이 아픈 적도 있다. 주변 사람들이 자주 걱정하고 너무 바쁘게 사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하지만 나는 올 한 해 내가 이렇게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며 바쁘게 산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1년 전으로 되돌아가더라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2025년은 내가 시민사회에 할 수 있는 만큼 기여하며, 내가 어떤 활동을 잘 하는지,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지,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탐색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행성인 HIV/AIDS 인권팀을 포함해서 내가 몸담은 곳들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활동하며, 내가 할 수 있고 잘 하는 것들을 해야겠다. 한 해를 돌아보며 내가 참여했던 활동에서 얻은 것들을 돌아볼 수 있는 것이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큰 연말 선물인 것 같다. 행동하는 성소수자가 세상을 바꾸니까, 앞으로 계속 행동하고 활동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