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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인 활동

[활동 후기] 논바인데 논바가 알고 싶어서 〈논바가 알고 싶다〉를 찾아간 얘기

by 행성인 2025. 12. 23.

애옹 (행성인 트랜스젠더퀴어 인권팀)

 

 

 

 

논바이너리 젠더퀴어가 뭐예요?”

어떻게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하셨어요?”

논바이너리로 느끼게 계기가 뭐예요?”

 

논바이너리 젠더퀴어로 정체화한 , 이런 질문을 여러 받았다. 그럴 때마다 논바이너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주고, 나아가 차별 없이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돌아오는 질문

 

어떻게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하셨어요?”

 

이런 경험과 상황들을 마주했을 논바이너리 동지들을 직접 만나고 싶었고, 그들의 고충과 젠더 감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논바이너리가 아닌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 있는지 기대감이 컸다.

회원 모임에서는 가족, 친구, 사회생활을 중심으로 각자의 관계망에서의 느낌, 경험, 고민 들을 나누었다

 

 

당신을 부르는 여러 가지 방식

 

호칭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았다. /남성으로 나눠진 가족 호칭과 자신이 젠더 감각의 불일치감에 불편감을 많이 토로 했다. 이름을 부르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끈끈하게 맺어진 가족, 친척들과의 관계가 있는 분들에게는 부적절할 수도 있겠다. 나의 경우를 들자면, 정체화가 비교적 오래되지 않기 때문에 정체화 전에 맺은 관계의 경우, 이전의 호칭을 사용한다. “언니라고 불렀던 기간이논바였던 기간보다 과히 길기 때문에, 그리고 여자로 살았던 삶도 나였기 때문에, 둘을 이해하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했다. ( 부분에 대해서는 여성으로서 태어나 살아온 서사와 논바이너리로서의 삶을 긍정하는 친구의 도움이 컸다

호칭을언니에서 이름으로 바꿀 수도 있고, “이라고도 있다. 세상은 성별 이분법적이라서 논바이너리한 내게 바이너리한 선택을 요구하는가! 그럴 그냥 자신에게 편한 호칭을 쓰면 된다. 내가언니언니라고 부른다고 해서 여자력이 강화되고 논바력이 약화되지 않으니 말이다.

 

 

여자 되기 강요받는 교실

 

자신이 몸담은 곳이 특정 성별로 이루어져 있고, 그래서 특정 성별로 패싱될 때에 대한 고민 나눔이 있었다. 논바이너리라는 말을 알지도 못하던 여고 시절이 떠올랐다. 정체성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에도 블라우스-치마로 교복을 입고 혼자 화를 냈다. 학교는 바지 교복이라는데! 청소년인 나에게 성숙한 여성으로 자라기 위해 학교가 강제했던 폭력에 대해 기억한다. 치마가 비쳐서는 된다고 속치마 검사를 하고, 숏컷을 금지하고, 브래지어가 비치면 벌점을 주는 학교였다. 그러한 학교 교칙들은 나를 잠재적 여성으로 규정하고, 외의 자유로운 청소년으로서 자유로운 모습에 대해서는 사회에 보여서는 것으로 규정하고 벌점을 부과하기도 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성숙한 여성을 배출해야 하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기에 당연히 모두를 여성으로 규정했다. 자유롭고 싶은 청소년일 뿐이었는데, 현실은 학교라는 시스템 앞에서 무력해지는 학생 하나일 뿐이었다.

 

 

남자야? 여자야?”

 

나는 숏컷에, 보이쉬한 옷차림, 애매하게 /남성인지 없는 얼굴을 가졌다. 그래서 마을버스에서 만난 꼬마 아이가 나를 가리키며엄마, 사람은 남자야? 여자야?”라는 질문을 했다. 그때 묘한 쾌감을 느꼈는데, 내가 바이너리 하지 않기 때문에 저런 질문이 나올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를 누구도 규정할 없다!

 

 

장롱 속의 젠더

 

어떤 분에게 답변했던 일부를 이야기하려 한다. 젠더라는 스펙트럼이라 생각한다. 수많은 스펙트럼 속에 내가 어디에 정확히 속해 있는지 없다. 다만 장롱 속에서 관념적으로 여성스럽다고 말하는 옷을 꺼내 입기도 하고, 관념적으로 남성적인 옷을 꺼내 입기도 한다. 나에게 젠더란 그런 것이다. 여러 옷이 들어간 장롱 속에서 꺼내입는 옷처럼  “/남성 중의 어떤 것으로 구분지을 없는 . 그리고 그런 복장으로 나의 논바이너리 정체성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논바가 알고 싶다>에서 제일 좋았던 , 논바 동지들을 직접 대면하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서 수많은 논바들이 있었지만, 만난 적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번 기회를 빌려 논바들이 갖고 있는 고민을 털어놓고, 답변을 하기도 하면서 논바로 산다는 것을 공유할 있었다. 그런 공유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들은 줌이 아니라는 감각을 느낄 있어 좋았다. 앞으로도 논바이너리 젠더퀴어, FTM, 폴리아모리 등과 같이 성소수자 속에서도 소수자라 가시화가 이들과 함께 만나며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