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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코코넛의 눈코입귀

[코코넛의 눈코입귀] 내가 내 몸을 사랑하든 말든

by 행성인 2026. 1. 26.

코코넛 (행성인 HIV/AIDS인권팀)

 

 

몸은 종종 까다로운 외적 평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크루징을 하거나 어플을 돌릴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아무래도 상대의 얼굴과 몸이다. 외면은 상대에게 다가갈지를 결정할 때 가장 크게 작용하는 요소 중 하나다. 나름 인권활동을 하고, 외모에 대한 차별과 평가를 지양하는 공동체 분위기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 나조차도 외모의 기준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상대방에게 원하는 외모나 스스로 정해 놓은 추구미, 혹은 외모적 기준은 아무리 열심히 인권운동 한다고 해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현대 사회에서 정해 놓은 미적 기준이 굉장히 각박하고 유해한 면은 있다고 느끼기는 한다. 최근에 그런 면모를 뼛속 깊숙이 체화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이번 달 초에 시도한 바디프로필 촬영이다.

 

바디프로필을 도전하게 된 계기가 좀 웃긴다. 기억으로는 행성인 HIV/AIDS인권팀 모임이 끝나고 뒷풀이에서 술을 마시면서 바디프로필 촬영을 결정한 것 같다. 나와 비슷하게 평소에 헬스를 취미로 삼는 팀원이자, 올해부터 함께 공동팀장을 맡게 된 정우와 이야기 하다 둘 다 취기가 올라 객기로 바디프로필을 비슷한 시기에 촬영해보자고 했던 것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HIV/AIDS팀 담당 상근활동가인 남웅이, 둘의 바디프로필을 놓고 행성인에서 인기투표를 해보자고 했다.(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이 글을 편집하는 남웅 활동가가 정정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해서 다섯 달 가량의 고통스럽고도 아주 많은 사유를 요하는, 바디프로필 도전이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바디프로필이라고 일컬어지는, 최소 상의를 탈의하며 운동으로 가꾼 근육과 몸매를 보여주는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여기서 '비용'은 금전뿐 아니라 시간과 에너지의 측면도 말하는 것이다.) 일단 사진 찍을 스튜디오를 검색해서 결정하고, 예약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인스타그램에서 계정을 운영하는 수많은 스튜디오들의 바디프로필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내가 원하는 분위기와 맞는 곳, 보정이 너무 어색하거나 덜하거나 과하거나 부자연스럽지 않는 곳, 비용이 예산 범위 안에 있는 곳을 한 군데 찾아서 결정하고, 인스타그램 디엠이나 카카오톡 채널로 스케줄을 잡은 다음 예약금을 입금해야 한다. 내 경우에는 비용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여 비용 대비 많은 수의 보정본을 받아볼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최종 후보 두 군데 중, 제작년에 바디프로필을 촬영한 적이 있는 친한 형의 조언을 듣고 그가 예약한 스튜디오를 확정했다. 다행히 원하는 날짜와 시간대에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고, 대략 네 달 전에 스튜디오를 예약했다. 그 후에는 어떤 컨셉으로 촬영 기록을 남기고 싶은지, 어떤 의상을 원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작가와 사전에 대면/비대면 상담을 진행하는 스튜디오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는데, 내가 고른 스튜디오는 후자에 속했다. 원하는 컨셉을 미리 전달하는 건 괜찮다고 해서 원하는 컨셉 설명과 레퍼런스 사진 등을 PDF 파일로 정리해서 작가님께 보냈다. 그 밖으로 촬영 당일 헤어/메이크업에 드는 추가 비용, 의상을 개인적으로 구비하거나 스튜디에서 대여할 때 드는 비용, 마음에 드는 원본이 예상보다 많다면 추가 보정본을 위해 지불하는 비용 등등이 있다.

 

촬영 자체를 위해 준비하는 비용 말고도 정말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바디프로필을 찍을 만한 몸을 만들기 위한 금전적, 시간적, 체력적 비용이다. 여기에는 헬스장 이용권, 피티 구독료, 식단을 위한 음식에 드는 비용, 출근 전이나 퇴근 후에 시간을 쪼개 거의 매일 한시간 반에서 두시간 동안의 고강도 운동을 하는 데 드는 체력, 원하는 음식을 먹지 못해 메말라 가는 정신과 각박해져 가는 심리적 여유 등이 있다.

 

여기서 정우와 나의 준비 과정이 달라진다. 이전부터 피티를 받으며 바디프로필 준비 과정에서 체계적인 일대일 코칭을 받을 수 있던 정우와 달리, 나는 금전적인 부담 때문에 피티를 받지 않고 헬스장 이용권만 결제하면서 따로 운동을 했다. 운동이나 식단 면에서 고민이 있을 때 인공지능이나 유튜브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농담으로 헬스장 피티 때신 챗지'피티'라고 한 적도 있다.) 더군다나 6년 가까이 비거니즘을 지향하는 까닭에 헬스인들이 많이 찾는 닭가슴살, 유당단백질 제품, 계란 등을 전혀 먹지 않았고, 시중에 나와 있는 비건 단백질 제품과 두유, 두부 등으로 하루에 130그램 정도 되는 단백질을 보충해야 했다. 사실 비건 식단으로도 사람이 하루에 필요한 만큼, 혹은 근육을 키우는 데 필요한 만큼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두 달 연속으로 생두부 사백 그램을 매일 퍼먹으면 물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바디프로필 준비가 막바지에 다다를 쯤에는 평소에 예민하게 느끼지 않던 콩 비린내가 역해져서 한 끼 식사를 하는 데에 3~40분까지 걸리기도 했다. 촬영일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피로가 쌓여 심한 감기몸살이 찾아오기도 했고, 운동이나 식단 탓인지 체질 탓인지는 모르지만 원하는 만큼의 근육(주로 복근)이 생기지 않는 것 같아 여러모로 컨디션 난조인 와중에 얼레벌레 촬영을 마쳤다.

 

촬영이 끝나고 나서, 일상은 그렇게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애초에 식탐이 엄청나지 않기 때문에 평소에도 꾸준히 챙겨먹는 단백질 제품을 먹으며 헬스를 하고 있으며, 촬영 준비 때문에 거의 끊다시피 한 술은 이전처럼 열심히 마신다. 다만 촬영 직후 며칠 동안 잠깐 입이 터져 운동을 쉬고 열심히 먹자 인바디 수치가 충격적으로 변해서 식단 관리의 필요성을 다시금 느끼기는 했다.

 

그렇지만 촬영 준비 과정부터 촬영 후에 마주한 나의 몸과 몸 인식이 정말 퀴어함을 다시 한 번 상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지정성별 남성에게 흔히 요구되는 미의 기준, 그러니까 가슴, , 어깨, , 팔 등에 골고루 발달한 근육질의 몸매를 지향하며 열심히 운동을 했고, 흔히들 사람들이 찍는 것과 비슷하게 상의를 탈의하고 촬영했다. 그러나 내가 전시하는 근육은 기후위기와 동물권, 공장식 축산 등의 의제에 깊이 공감하여 동물성 제품을 먹지 않고 식물성 단백질원만으로 만든 근육이다. 애초에 근육이 많이 발달되어 있고 덩치가 좋은 체형이 아니며, 그런 체형보다는 게이 용어로 ‘twink’‘twunk’(편집자 주: 트웡크는 영미권에서 사용하는 게이커뮤니티 은어로 10대 후반-20대 중반의 슬림하지만 근육이 붙은 체형을 가진 퀴어 남성을 가리킨다. 트윙크와 헝크 사이의 몸을 상상해보자.) 사이 어딘가를 추구미로 삼는 나는 추구미가 아닐 뿐더러 현실적으로도 도달이 거의 불가능한, 바디프로필 찍는 남성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체형을 목표하며 운동하지 않았다. 나의 체형과 체질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만큼을 보여주려고 했고,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들에게 흔히 요구되는 기준에는 굳이 맞춰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매일매일 달라지는 체지방률, 골격근량, 바디체크를 할 때 보여지는 근육의 모양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추구미로 삼은 몸은 바디프로필을 찍는 남성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체형이 아니지만, 그 체형 또한 게이 사회에서의 기준에 자유롭지 못하다. 게이 사회에서 슬림 근육’, 혹은 그냥 슬림정도로 분류되는 몸을 가지고 있기에 그 체형의 범주 안에서 몸을 예쁘게 가꾸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그 예쁘게 가꾼 몸의 세부 기준은 또 일반 사회 전반에서 요구되는 지정성별 남성의 몸에 대한 기준에도 영향을 받는다. 어느 정도로 근육이 선명해야 하고 배가 나오지 말아야 하며 팔뚝살은 없어야 한다는, 정상 사회의 기준은 게이도 예외가 아닌지라 게이들만의 식, 혹은 추구미에 따라 다소간 변형되었더라도 남아 있다. 이런 사정에서 정상성에 의한 몸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 나만의 몸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몸은 정상 사회의 기준과 게이 커뮤니티에서 예쁘다고 여겨지는 체형, 그리고 비거니즘 생활 방식이 모두 섞인 맥락 어딘가에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몸을 온전히 사랑하기는 어렵다. 모든 몸이 아름답고 바디 포지티브를 외친다고 해도, 내 몸이 어떤 체형이든 만족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항상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 퀴어한 나의 몸에 대해 1365일 자긍심을 갖는 척을 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내 몸이 마른 근육질의, 선명한 근육을 보이는 ‘twink’‘twunk’ 사이에 있는 그런 체형이었으면 좋겠고, 스스로 허용할 수 있는 기준 이상으로 근육이 흐려지거나 살이 찌면 (인권활동을 하지 않는 게이 커뮤니티 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자존감이 떨어지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렇지만 내 몸을 사랑하지 않는 면모 또한 퀴어한 스스로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서, 적어도 스스로의 몸에 대해 정치적 올바름과 거리가 조금 있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조금 관대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몸, 혹은 바디프로필을 촬영했을 때의 몸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조금 더 고생해서 나중에 다시 한 번 바디프로필 촬영에 도전해볼 수도 있다. 내 몸을 항상 사랑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내 몸을 사랑하지 않는 나 자신은 사랑하려고 노력할 수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