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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이야기/코코넛의 눈코입귀

[코코넛의 눈코입귀] 민증을 내밀고 돈을 내는 풍경에 관하여

by 행성인 2026. 3. 18.

코코넛(행성인 HIV/AIDS인권팀)

 

 

클럽에서 친구사이 RUN/OUT 프로젝트 상근활동가 기진과 함께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사람도, 사랑도, 습관도, 내가 좋아하던 동네의 풍경과 가게들도, 물가도, 자주 가던 식당의 메뉴도 변한다. 어쩌면 변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수 있지만, 가끔씩은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데도 변하는 것이 있다. 퀴어 커뮤니티도 예외는 아니다.

 

2023년 여름, 처음 퀴어 커뮤니티에 나와 이태원 클럽을 갔을 때는 웬만한 게이 클럽들이 누구나 입장료를 내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제작년인가 작년 즈음부터 무료 입장이었던 클럽들이 다같이 담합이라도 한 마냥, 동일한 가격 정책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신분증상 남성인 사람들은 이전처럼 무료로 입장할 수 있지만, 신분증에 여성이라고 적힌 사람들은 입장료 5만원. 테이블을 예약했다면 테이블당 여성무료입장 한 명.

 

그 전에도 클럽들이 입장료를 받았던 시기가 있다고 들었지만, 내가 처음 클럽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는 처음 마주하는 변화이다. 5만 원이 프리드링크 포함 가격도 아니고, 클럽에 가서 두어 시간 놀기에는 비싸고 부담되는 가격인 것은 맞다. 솔직히 말해서 이 변화는 처음부터 여러 구멍이 보였다. 일단 신분증에 남성이나 여성이라고 적힌 것만으로 실제 그 사람의 성 정체성을 판단할 수 없을 뿐더러, 나와 종종 클럽에 함께 가는 친구들 중에는 신분증상 여성인 논바이너리, 혹은 퀴어 여성이 꽤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여성의 입장을 제한하는 대응이 적절한가도 논해볼 수 있겠다. 그래서 이번 글의 주제는 이태원 게이 클럽, 더 정확히 말하면 게이 클럽의 여성입장료 부과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과 분석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에 대해 더 얘기해 보고 싶다면, 언제나 환영이니 연락 주시라.)

 

왜 게이 클럽들이 근래에 들어 여성에게 입장료를 부과하는지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게이 클럽은 기본적으로 게이(혹은 남성애를 하는 남성 스펙트럼의 성소수자 전반)들이 모여서 헤테로 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게이 클럽의 주 고객층, 혹은 메인 타겟이 게이 커뮤니티인 것은 당연하다. 그러던 것이 각종 매체에서 게이 커뮤니티의 유흥 문화가 가시화되면서 최근들어 게이 클럽을 찾는 여성, 특히 비퀴어 여성의 비중이 늘어났고, 그 안에서 사진이나 영상 등을 촬영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갈 일이 흔치 않은 게이 클럽을 방문했으니 신기해서 촬영을 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클럽 문화가 궁금하기도 하고, 여자들을 어떻게든 꼬셔 보려는 헤테로 남성들이 가득한 일반 클럽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면서 즐겁게 놀 만한 공간이라고도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비 퀴어 여성들이 게이 클럽을 방문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그들의 촬영과 게이들을 구경거리로 여기는 시선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기본적으로 게이들의 유흥 공간으로 꾸며진 공간에 여성들의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클럽에서 촬영 제한 및 신분증 상 여성 입장료 부과 정책을 내놓게 된 게 내가 아는 배경이다.

 

비 퀴어 여성들에게 5만원이라는 입장료를 부과하며 클럽에 대한 장벽을 높이는 것이 적절한가. 게이 클럽을 자주 방문하며 커뮤니티의 구성원으로 정체화하는 당사자로서, 클럽을 방문하는 게이들이 느꼈을 불편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아웃팅 위험에 대한 감각이 부족한 비 퀴어들이 클럽에서 술마시고 춤추며 노는 게이들을 (비건 당사자로서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있겠지만) 동물원 원숭이처럼 구경거리로 바라보고 있는데 당연히 불편할 만도 하다. 그렇지만 최근의 정책은 클럽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게이 남성 혹은 시스젠더 이성애자 여성, 이렇게 두 부류로만 바라본, 굉장히 납작한 판단이 아닌가 싶다. 게이 클럽을 방문하는 여성들에게 불편함을 느껴 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클럽에서 게이들이 불편해할 만한 사람은 비 퀴어 여성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비 퀴어 여성들보다 (지인이나 앨라이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비 퀴어 남성들을 클럽에서 보는 것에 더 불편함을 느끼는데, 현재의 정책으로는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들의 게이 클럽 출입을 제한할 별다른 방도가 없다. 실제로 신분증상 여성 입장료 부과 이후에도 유명한 게이 클럽에서 놀고 있는 이성애자 커플을 본 적이 있다. 게이 클럽을 방문한 비 퀴어 남성들의 클럽 방문기도 이따금씩 보인다. 이보다 더 불편한 일이 있을까. 게이들에게 있어 비 퀴어 여성보다 비 퀴어 남성들이 더 큰 위험이라는 고정 관념이 있는 편인데, 애초에 문제를 원천 차단하지 못하는 정책이라면 굳이 지속시킬 필요가 있나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태원 게이 클럽에게 퀴어 정체성과 스펙트럼을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신분증상 여성이라는 기준부터 그렇다. 여성의 출입을 배제하기 위함이라면 트랜스젠더 여성은 어떤가. 신분증에 여성이라고 적혀 있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는 입장료를 내야 하는가. 법적 성별 정정을 완료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남성에게는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 비 퀴어 여성들이 클럽 안에서 가끔 보이는 감수성 부족을 문제시한다면, 퀴어 여성들의 출입까지 막을 이유가 있는가. 거의 매주 이태원을 가는 트래스젠더 여성 친구는, 입장료 오만 원을 꼬박꼬박 내고 클럽을 가다가 입장료가 부담되었는지, 이태원에 있는 게이 클럽 대부분에 인스타그램 디엠을 돌려 입장료에 대한 답변을 받아냈다. 신분증에 남성이라고 적혀 있거나(즉 트랜스젠더 여성이지만 법적 성별 정정을 완료하지 않았거나) 트랜지션을 경험했다는 서류 등을 제시할 수 있으면 무료 입장을 적용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여성으로 법적 성별 정정을 완료한 친구이지만 여권에는 아직 남성이라고 적혀 있기에 클럽에 갈 때마다 여권을 챙긴다. 또 다른 친한 동료 활동가는 신분증에 남성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남성이라고 적힌 주민등록증을 들이밀고서도 얼마 전에 게이 클럽에서 소위 입밴을 당했다. 신분증에 여성이라고 적혀 있는 논바이너리 친구는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정말로 여성인 트랜스젠더 여성 친구는 입장료를 내지 않는다. 게이 클럽에 오는 게이들 대다수보다 성소수자 정체성 및 아웃팅 위험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할지 모르는 시스젠더 퀴어 여성 활동가 친구는 입장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성소수자 감수성 따위 내다 버린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은, 남성이기 때문에 아무 돈도 내지 않고 게이 클럽에 들어갈 수 있다.

 

시스젠더 게이가 아닌 친구들과도 클럽에 가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나로서는 섣불리 먼저 이태원에 가서 놀자고 제안하기도 망설여진다. 여성남성이 무엇인가, 패싱되는 외모가 어떤 성별인가에 대한 고찰이 클럽 운영진들 사이에서 이뤄지면 좋겠다. 클럽에 와서 밤새 바틀을 까고 칵테일과 아구아밤을 마시며 놀 준비가 되어 있는 시스젠더 게이들이 주말 밤마다 클럽 앞에 줄을 서고 기다리는 현실에서 사소한 일처럼 취급되더라도 말이다.

 

이런 정책을 펼치는 클럽에 자주 가면서 클럽을 비판할 위치에 있는지 망설여지긴 한다. 현실적으로 다양한 젠더 스펙트럼을 존중하면서도 클럽을 이용하는 게이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만한 방도를 나에게 마련하라고 한다면, 지금 당장 뾰족한 방안이 생각나는 것도 아니다. 클럽에 오는 사람들을 줄세워 놓고 스캔하면 이 사람이 퀴어인지 아닌지, 퀴어 감수성이 얼마나 풍부한지 뜨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시장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게이 클럽은, 주 고객층인 게이 들 중 대다수가 여성으로 보여지는 사람과 클럽이라는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일지 모른다.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이라도 일단 남성이고 남성으로 보이기 때문에 게이 클럽에 가는 것이 문제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신분증에 여성이라고 적힌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오만 원씩 받는 게 운영진 자신들도 찜찜함을 느낄 것 같다. 게이들에게 불편함을 유발하고 싶지 않다면, 다른 방안을 찾으면 어떨까. 

 

게이 클럽을 즐겨 방문하는 비 시스젠더 게이인 성소수자들이나 앨라이들도, 그리고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 같은 게이들도 살피는 것이 퀴어 클럽, 혹은 게이 클럽의 마땅한 도리 아닐까. 가끔씩은 게이 클럽이 아닌 퀴어 클럽을 바라기도 한다. 케이팝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하우스와 테크노도 자주 틀어주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상관없이 퀴어라면 누구나 와서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그런 유흥 공간 말이다. 지금의 게이 클럽이 그런 공간의 역할을 좀 더 잘 해주었으면 한다. 그러면 퀴어 친구들을 데리고 클럽에 더 자주, 편한 마음으로 올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