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 (행성인 HIV/AIDS 인권팀)
저번달 행성인 웹진에 수풀님이 쓴 〈다신없어 이태원〉을 읽고 생각했습니다. 게이들은 왜 이렇게나 불행할까요. ‘게이-외로움’을 다룬 기사가 한때 많은 이들에게 읽힌 적이 있죠. 저는 중증의 게이-외로움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흔히 ‘호모 라이프'를 멋진 소셜 네트워크 계정, 화려한 파티, 탄탄한 근육, 자유로운 섹스로 이미지화합니다. 저 역시 그런 계정과 파티, 섹스의 당사자고요. 하지만 그 화려함 이면 속 제 마음에는 설명하기 힘든 깊은 침전물, 즉 '게이-외로움'이 깔려 있었습니다.
이 외로움은 어디서 올까요? 저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찾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얘기할 겁니다. 가부장제, 거부하면 그만 아니냐고요. 종로나 이태원의 화려한 조명 아래서 우린 이미 자유를 찾았고, 하다못해 데이팅 앱만 켜면 자유로운 만남이 가능한데 그게 무슨 큰 문제냐고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에세이 〈이태원 다신없어 : 자유롭다는 착각〉에서 이야기했듯, 그건 착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구 사람들이 신을 찾지 않아도 기독교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또한 보이지 않는 가부장제에 이미 포획되어 있습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들으면 오히려 코끼리가 생각나는 법이죠. ‘가부장제를 무시하자!’라는 의지만으로는, 우리를 둘러싼 끈질긴 구조에서 결코 도망칠 수 없는 것입니다.
목사 아들로 자라난 게이 소년은 자신이 남성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욕망을 무의식적으로 ‘금지’당했습니다. 예컨대 '결혼은 여자랑 하지만 사랑은 남자랑 나눌거야'라며 동성애를 절반쯤 부정한 어린 시절의 저처럼요. 이러한 금지는 아까 말한 코끼리의 사례처럼 저 하나가 대처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사랑하는 대상를 금지당해서 잃었을 때, 사람은 충분히 울고 슬퍼해야 비로소 그 상처를 떠나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저의 사랑은 세상으로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 혹은 ‘비정상적인 것’ 취급을 받기에, 슬퍼할 것인지 생각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네가 남자를 좋아하는 건 사랑이 아니야, 그냥 일탈이였을 뿐이지'
동성애에 매몰차게 규정하는 사회의 명령 앞에서, 말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했던 게이 소년으로서 저의 상실감은 밖으로 표출될 출구를 찾지 못하고 고스란히 내면으로 굴러떨어졌습니다. 밖으로 터져 나오지 못한 울음은 증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썩어들어갔죠. 해소되지 못한 슬픔이 켜켜이 쌓여 몸속에서 딱딱하게 굳어진 것, 이것이 저의 몸에 새겨진 원초적 외로움의 정체입니다.
종종 결핍 앞에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공허할까?'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나, 잭디와 그라인더 속 제 모습들은 화려한 클럽과 운동한 몸, 힙한 사진들로 채워져 있는데, 스마트폰 화면이 꺼진 뒤, 모텔을 떠난 뒤, 종태원을 떠난 뒤, 찾아오는 적막은 왜 이리도 깊고 어두운지 말입니다.
가부장적 사회는 끊임없이 정상적인 남성성을 정의하고, 궤도에서 벗어난 이들을 실패작이라 판단했습니다. 무서운 점은, 어느 순간부터 이 사회의 혐오를 내 자신의 목소리로 착각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게이는 더럽다'는 세상의 손가락질은 무의식적 층위에서 '나는 더럽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자기 파괴적인 믿음으로 변했습니다.아니, 내재화된 혐오는 교묘하게 ‘취향’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나 저를 강박과 우울의 늪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나는 남자가 되어야 해'라는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헬스장에서 건강보다는 미용을 위해 ‘강박적으로’ 운동하며, 나의 몸의 일부일 수 밖에 없는 ‘여성성’이나 ‘표준에서의 이탈됨’을 스스로 난도질했습니다. '어머'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려 노력하고, 게이 친구들과 일틱한 사진을 고르기 위해 서로를 서로가 평가합니다. 자연스럽게요. 어떻게든 ‘게이 주류’에 들어가려고 친구들을 사귀구요. 제가 ‘스스로’ 원하는 강한 남성이 되기 위해 헬스장에서 몸을 부풀리고, 사회적 남성성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수행하며 필사적으로 '만들어진 정상성'을 연기했었습니다.
하지만 연기하고 노력하는 삶은 지독한 피로감을 동반했습니다. 아무리 근육을 키우고 인스타나 트위터 팔로워가 늘어도, 잭디와 그라인더에서 아무리 팔려도, 클럽에서 아는 친구가 많아도, 내면 깊은 곳의 남자다워지려는 욕망은 끊임없이 채찍질합니다. ‘남자다운 척’하며 얻어낸 사랑과 인정은 결코 나의 몸을 온전히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상대가 사랑하는 것은 제가 만들어낸 환상이지, 상처받은 내 몸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가장 잘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거대한 자유 앞에서 섹스를 포기한 게이들〉에서 저는 ‘팔림의 논리’에서 상대방은 살아있는 인격체가 아니라, 외로움과 성욕을 해결해 줄 ‘환상’으로 소비된다고 말했습니다. 상대의 몸을 들여다보는 대신 상대의 이미지를 평가하고, 서로의 감각을 교환하는 대신 그의 능력을 잰 뒤, 나의 환상에 부합할 때만 상대에게 잠시 곁을 내줬습니다. 환상이 깨지는 순간, 혹은 더 자극적인 새로운 환상이 등장하는 순간, 과거의 관계는 가차 없이 폐기시킵니다. 세상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타자화했던 그 폭력적인 시선을, 저는 게이 남성들에게 ‘스스로’ 휘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상처받고, 여성스럽고, 나이 들고, 평범한 게이들의 ‘살결’은 매력이 없다면서요. 그러니 완벽한 게이-남성성의 서사를, 혹은 ‘상품’을 행해서 ‘내 취향’을 만족시켜야 한다며 그 조건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람답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주말마다 클럽을 갔었고 어플에는 새로운 알림이 떴지만, 역설적이게도 커뮤니티 안에서 철저히 혼자였습니다. 환상과 환상이 부딪히는 곳에 살이 부딪히는 접촉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자의 몸을 탐닉하지만 정작 누구에게도 닿지 못했다는 공허함, 타인을 소비하다 결국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 쓰고 버려질 소모품이 되었다는 비참함. 이 감정들이 모여 제 감정 속에 고농도의 우울을 만들어냅니다. 타인의 몸을 껴안고 온기를 나누는 대신, 서로가 쓴 가면의 화려함을 칭송하거나 비판하게 됩니다. 그렇게 게이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가장 완벽하게 고립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게이적으로 이상적인 남자는 단순히 인서울 공대를 나와 동탄에서 살고 대기업에 다니는 남자가 아닙니다. 탄탄한 근육과 거침없는 섹스 어필, 어플리케이션 속에서 수많은 ‘오른쪽’과 ‘손흔들기’를 받아내는, 소위 ‘게이 커뮤니티 내 팔림 가치가 높은 남성’이어야 합니다. 팔림은 이 가혹한 게이-남성성의 기준을 통과했다는 유일한 인증 도장이었습니다.
열심히 연기하고 노력해서 ‘잘 팔리는 몸’, ‘먹히는 남자’가 된 채 상대방을 정복하거나 혹은 상대에게 선택받는 그 찰나의 순간. 역설적이게도 가장 비참한 방식으로 ‘완벽한 게이 남성’이라는 환상을 체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그리고 우리 커뮤니티가 숭배하는 허상과 하나가 되기 위한 슬픈 제의였습니다. 그러나 이 제의는 언제나 실패로 귀결됩니다. 환상은 만져질 수 없기에 비로소 허상으로 존재하니까요. 게이 커뮤니티가 숭배하는 그 ‘남성성’은 제가 손을 뻗을수록 미끄러지며 영원히 유예되는 약속일 뿐입니다. 닿을 수 없다는 그 불가능성만이 유일한 진실이었던 셈이죠.
그렇기에 저에게는 영원히 유예되는 ‘남성됨’이라는 약속을 대신할, 즉각적이고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제 안의 깊은 게이-외로움을 부정하기 위해, 그토록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며 ‘행복한 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데이팅 앱의 섹스나 클럽에서의 춤이라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누군가에게 욕망의 대상으로 선택받는 순간, 즉 남성의 능력으로 하나로 평가받는, 소위 욕망의 주체로서의 ‘잘 팔리는 나’를 확인받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 지점에서 데이팅 앱을 자주 접속하는 지점뿐만 아니라 종로와 이태원을 그렇게 드나드는 제 마음들도 함께 설명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팔림의 선택만이 제가 그토록 갈망하던 남성성이라는 허상에 잠시나마 닿았다고 믿게 만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욕망의 주체성도 결국 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 저는 속절없이 무기력해졌습니다.
제가 겪은 이 무력감은 비단 저만의 비극이 아닐 겁니다. 만약 제 우울이 게이 커뮤니티 누군가와 공유될 수 있다면, 이는 역설적으로 게이의 몸이 온전히 어느 한 게이의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방증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불편한 전제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게이로써 나의 몸은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가부장제가 점령한 채, 군인의 동성애 섹스를 금지하는 군형법이 게이들의 섹슈얼리티를 강탈하고, 동성혼 논의조차 꺼내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육체간 연대 계약을 금지당하는, 게이의 몸은 단지 ‘생물학’ 수준의 먹고 자고 싸는 것에 불과한 ‘기계’에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의 몸들은 점령당했지만 살아있는 ‘노예’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식에 기반한 '내 몸은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다'라는 인정은 패배를 선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몸을 조종하고 있던 것이 내가 아니라 ‘사회의 혐오’와 ‘가부장적인 성별이분법의 망령’이었음을 직시하는 용기 있는 고발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해방이라는 허상을 쫓기보다는 구체적인 자유를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을 써내려가고 점령한 언어는 우리 것이 아니지만, 그 언어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우리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더욱 더 실패해야 합니다.
최근에 저는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삶의 브레이크가 고장 난 듯 달리가다 큰 사고를 겪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쾌락과 인정을 좇던 저는 결국 정신적 한계를 맞이했고, 세상과 단절된 폐쇄병동에 몇 달간 입원해야 했죠. 치료기간 동안 ‘잘 팔리는 몸’이 되기를 포기당했으며, 마음 속 결핍과 우울을 있는 그대로 마주했습니다. 비로소 병동에서 그제서야 타인들을 ‘규격화된 상품’이 아닌 ‘사람’으로 마주했습니다.
저는 ‘잘 팔리는 몸’이 되기 위해 필사적이었습니다. 헬스장에서 강박적으로 몸을 부풀리고, ‘일틱하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 여성스러운 말투를 검열했습니다. 그것이 ‘게이’로서 사랑받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격리된 병동 안에서, 근육이 빠지고 머리가 헝클어진채, 하얀색 옷을 입으며 ‘환자’가 된 이후로 전 더 이상 ‘매력적인 게이 남성’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초라하고 실패한, 벌거벗은 한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철저한 ‘실패’의 한복판에서 기묘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 해방감이요. 물론 여전히 환자라는 한계에 갇혀있었지만, 게이라는 규범보다는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그토록 우울했던 이유는, 내 몸이 규격에 부합해야 하는 ‘상품’이었기 때문임을요. ‘강한 남성’을 연기하기 위해, 저는 제 안의 연약함과 여성성, 그리고 고유한 ‘퀴어함’을 스스로 난도질하고 있었습니다. 병동에서의 시간은 그 연기를 강제로 멈추게 했고, 비로소 ‘남자다운 척’하지 않아도 되는, 실패했기에 다양한 가능성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제가 남자-됨을 성공하기 위해 쌓아 올린 것이 폐쇄된 자아였다면, 이 실패의 경험은 이 자아를 허물어트렸습니다. 무너진 벽 너머로 타인이 보였습니다. 이 실패 속에서 허물어진 자아를 통해 타인에게 진정히 기댈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실패가 저를 더 강력히 만들었던 것이죠. 언제나 ‘혼자’보다 강력한 건 ‘우리’였으니까요.
여지껏 부끄러워하고 부정한 제 우울을 인정한 순간이야 말로, 즉, 실패의 경험이야말로 제가 이 폭력적인 정상성의 세계에 굴복하지 않고,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다는 가장 뜨거운 증거였음을 느꼈습니다. 실패했기에 이해될 수 있습니다. 비정상이기에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정된 ‘게이 남성’이 아닌, 무한히 확장되는 ‘퀴어한 사람’으로 변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게이들이 진정한 의미의 ‘퀴어-됨’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게이 커뮤니티는 ‘퀴어’라는 이름표를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게이들은 커뮤니티가 스스로 규정한 ‘정상성’의 범주에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근육을 갑옷처럼 두르고 남성성을 과시하며 우리만의 견고한 성(Castle)을 쌓아 올렸습니다. 어느 한 게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완벽한 게이 남성’이 되는 데 실패했을 때, 그리고 그 실패를 기꺼이 받아들였을 때, 우리는 본디 이상하고 기묘하다는 의미로써 퀴어들과 만납니다. 사회가 부여한 성별 규범과 내 몸이 끊임없이 삐걱거리는 감각, 즉 ‘성별 불쾌감(젠더 디스포리아)’은 비단 트랜스젠더만의 고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내자식이 왜 계집애처럼 구냐'는 비난을 들으며 자라온 어떤 게이 소년의 몸, 그리고 근육질이 되려고 게이 커뮤니티에서 발버둥치는 어떤 게이의 몸 또한, 남성성과 불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퀴어적인 몸의 위화감’을 겪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퀴어인 우리가 서로의 고통을 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손을 잡을 수 있는 연대의 단초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퀴어는 게이라는 정체성처럼 동질성을 기반으로 뭉치는 것이 아닌, 공통될 수 없는 차이 그 자체에 기반하여 근본적인 불가능성에 기대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예컨대, 섹슈얼리티에 적극적이라 생긴 게이들의 커뮤니티 문제와, 섹슈얼리티나 로맨틱을 경험하지 않아 사회적 차별을 받는 에이엄들은 서로의 고통을 각자의 언어로 완벽히 번역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나의 고통으로 타인의 고통을 재단하려 할 때 고통의 고유함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이해는 폭력적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근본적인 ‘이해 불가능성’을 받아들여야합니다. 저는 이 지점이 퀴어적 윤리의 가능성이 생긴다고 봅니다. 이 근본적인 불가능성에서 우리의 경험으로 하여금 각자를 어떤 측면에서든간에 ‘정상성’과 불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의 아픔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듭니다. 즉, 우리가 상호 이해불가능한 타인의 고통을 공유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은 타인의 고통을 우리의 슬픔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건 주디스버틀러나, 사라 아메드가 일찍이 이야기하기도 했죠.) 정상 사회가, 그리고 거기서 도망쳐온 자들조차 없애버리고자 했던 근본적인 차이는 슬픔을 기초로 우리를 새롭게 묶게 만드는 퀴어적 가능성의 단초입니다.
물론, 이렇게 거창하게 말한다고 해서 당장 세상이 뒤집히거나 완벽한 해방이 찾아오지는 않을겁니다. 최근에 게이 커뮤니티에 회자된 〈3670〉의 엔딩처럼 우리는 여전히 종로와 이태원의 골목을 서성일 것이고, 때로는 데이팅 어플 속 알림에 마음이 흔들리며 오지 않는 연락에 좌절할 것입니다. 또한 습관처럼 타인의 몸을 평가하고, 게이적 결핍과 외로움에 괴로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이 외로움은 내가 못나서 생긴 병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앓고 있는 시대의 열병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혼자 앓으면 병이 되지만, 함께 앓으면 그것은 퀴어인 서로를 알아보는 신호가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신호를 통해 완벽한 게이보다, 불완전한 퀴어로 ‘함께’ 살아가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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