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무지개문화읽기177

하위문화의 언어, 폐쇄적이지만 아름다운 판타지의 현실적 한계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비평- 하위문화의 언어, 폐쇄적이지만 아름다운 판타지의 현실적 한계 연극 비평 1. 도입 흔히 ‘동성애 바람’으로 지칭되는 대중문화계의 흐름은 이제 그 신선함이 어색할 만큼 익숙해졌다. 이는 곧 많은 콘텐츠에 길들여진 한국의 ‘똑똑한’ 대중들에게 동성애 소재가 더 이상 만만하게 접근될 수 없음을 의미할 터, 그래서 최근에는 국내외의 원작을 리메이크함으로써 일종의 ‘안전빵’에 기대거나 ‘팩트’를 가미하여 국내 관객과 시청자들의 공감을 넓히는 전략으로 다가서는 작품들이 많아진 듯하다. 예의 전략은 연극계에도 통하는 바, 뉴스에서 ‘파격’으로 수식된 작품들의 상당수가 동성애소재 연극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다른 시청각매체 분야보다 동성애 소재를 다루는 제작편수가 많은 연극계에서는 이미 많은 전략들이 시험되어오고.. 2011. 4. 8.
『하늘을 듣는다』 따라 읽기 『하늘을 듣는다』 따라 읽기 하늘을 듣는다, 가브리엘을 듣는다. 사람들에게 가브리엘은 이야기 잘하고 글 잘 쓰는 HIV/AIDS 인권활동가이자 친구로 알려져 있다. 아마 주변사람들이라면 그의 어록 한두 개 씩 간직하고 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 같다. 평소 그가 말을 많이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간혹 던지는 촌철살인 같은 한마디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힘을 준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주변 사람들의 요청에 그는 그동안 써온 글들을 엮어 책을 냈다. 덕분에 우리는 책을 통해 이야기 들려주는 가브리엘을 만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인권활동에 이르기까지, 책에는 자기 삶에 대한 고백을 공적인 투쟁의 외침으로 자연스럽게 엮어내는 그의 재주가 발휘되고 있다. 여기서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 2011. 1. 10.
‘실제’를 넘어 ‘실재’하는 게이들을 만나다 - 이혁상 감독의 <종로의 기적> ‘실제’를 넘어 ‘실재’하는 게이들을 만나다 - 이혁상 감독의 2008년에 케이블 방송국인 tvN에서 방영했던 게이 프로젝트 의 ‘한국 방송 사상최초! 100% 실제 게이 출연! 금단의 벽을 넘다!’라는 선정적인 홍보문구를 기억하는가? 이 프로그램을 보면, 카메라는 등장인물들이 ‘커밍아웃’하는 순간을 말 그대로 훔쳐본다. 그것은 선정적인 무언가를 갈구하는 관음증적인 시선에 대한 보답이다. 그들의 커밍아웃은 상대방에게서 공감의 눈물을 얻어내기도 하고 카메라를 회피하는 부정과 경악의 몸부림을 유발하기도 하며, 커밍아웃이라는 폭발적 사건의 감상적인 기록에 집중한다. 그것은 일반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의 다름 아니다. 이로써 ‘독립 장편 다큐멘터리’라는 낯선 형식을 빌어 제작될 수밖에 .. 2011. 1. 10.
영화 <친구사이?>의 청소년 관람불가 처분 취소 판결은 당연한 결과!! 영화 의 청소년 관람불가 처분 취소 판결은 당연한 결과!! 청소년들의 성정체성을 빌미로 동성애자 차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영화 (감독 김조광수)의 청소년 관람불가 처분 취소 소송에서 통쾌하게 패소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12세이상관람가 등급으로 상영된 영화 가 청소년들이 보기에 부적절하고 건전한 사회윤리, 선량한 풍속 및 사회통념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결정했다. 하지만 영화 제작사 측은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들의 알 권리를 침해할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영상물등급위원회를 상대로 등급분류결정 취소 소송을 냈다. 재판부의 객관적인 판단을 돕고자 영화를 법원에서 상영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는 불공정한 심의 결정에 불복하고 항의한 정당한 문.. 2010. 9. 14.
<에브리바디 올라잇>, 일탈을 접고 가족주의와 타협하다 1998년 를 통해 동성애적 욕망을 예술적 성취로 승화시킨 레즈비언 이야기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레즈비언 감독 리사 촐로덴코가 10여 년이 지나 이라는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레즈비언 커플을 스크린으로 불러냈다. 마약과 술에 취해 비틀대고 삶이 곧 예술임을 외치며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던 혈기왕성한 레즈비언들은 이제 사적 욕망을 억누르며 성숙한 부모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만 하는 중년의 레즈비언들로 돌아왔다. 그런데 달라지지 않은 점은, 이들에게도 역시 여성이든 남성이든 늘 성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 유동하는 성 정체성이 에서는 뛰어난 사진작품 탄생의 계기가 되었던 반면에, 여기에서는 가족 해체를 가져오는 불행의 씨앗으로 격하되었다. 레즈비언 커플인 깐깐한 의사 ‘닉(아네트 베닝).. 2010. 9. 7.
가시화와 비가시화 사이에서 - 최근 퀴어(가 등장하는) 영화들에 대한 단상 1. 미국 코미디 , 미국 SF 판타지 스릴러 , 중국 로맨틱 코미디 , 프랑스 드라마 , 일본 판타지 드라마 , 영국 미스터리 스릴러 , 미국 드라마 . 이상의 영화들은 제작국가와 제작 시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최근 한 달 사이에 국내에서 개봉한 비교적 저예산의 영화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들을 모두 관람하고 나서 또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유사) 성 소수자들이 주조연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더불어 그들은 동성애 혐오적인 편협한 재현 전략으로부터도 벗어난 채 다른 캐릭터들과 함께 균질적으로 진지하게 영화 텍스트에 스며들어 있다. 이 영화들이 한 달 전체 개봉작 중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니 결코 적은 수는 아니다. 퀴어들에게 각박한 한국 사회를 향한, 국적과 장르.. 2010. 8. 5.
근성과 에너지로 호흡하는 작가 키스해링 80년대 레이건정부가 주도했던 자유주의 성장정책은 대중문화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헐리웃에서는 , , 등 영웅을 신화화하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대량생산되었고, 저항적인 펑크문화는 MTV의 등장과 함께 급속히 팽창한 팝시장에 밀려나게 되었다. 팝문화의 팽창으로 세계 문화시장을 장악하게 된 미국. 패권을 유지하려는 열망과 함께 미국 정부는 보수적인 정책노선을 내세웠다. 확대된 시장정책과 보수적 정치성향은 월남전을 전후로 일어났던 70년대 저항의 분위기를 소비시장에 편입시켰다. 80년대를 휩쓴 팝의 용광로 속에서 저항적 대중들은 개인적인 관심사의 영역으로 위축되었고, 곧 ‘착한 시민’의 모습으로 사회에 순응했다. 하지만 동시대 미국사회의 주변부에서는 새로운 현상들이 목격되었다. 특히 문화·예술의 장에서 뉴욕의.. 2010. 8. 5.
‘앤디 워홀’, 그의 이름 1. ‘지겨운 나른함, 질리게 봐온 창백함.’ 1949년, 체코 이민 2세 출신의 상업그래픽 작가가 뉴욕에 첫 발을 내딛었다. 뉴욕, 그에게 그곳은 울트라 스펙터클의 신천지였다. 스케일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도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쏟아지는 광고와 온갖 상품들, 하늘을 찌르는 빌딩숲 사이로 사람과 자본이 넘실대는 풍경들. 모든 것이 사건과 뉴스로 소비되고, 사람들마다 ‘유행’이라는 세련됨으로 무장한 도시. 대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에 입성하여 그가 처음으로 시작한 작업은 광고 일러스트였다. 그는 종종 흐드러진 코르셋에 온갖 장신구가 치렁치렁한 여성 캐릭터를 선전용 전단에 그려 넣으며 허리춤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더러 여성의 제스처와 표정을 과잉되게 연출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그려 넣기도 했다. ‘나.. 2010. 7. 4.
어느 염세주의자의 낭만적 사랑 - 소준문 감독의 <REC> 게이 옴니버스 영화 중 소준문 감독의 데뷔작 은 서울을 떠나 보길도라는 섬에 정착한 게이 커플의 갈등을 다룬다. 그들은 그곳에서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서 2년간 함께 살아왔으나, 커플 중 한 명이 그 섬을 떠나고 싶어 하자 이별의 순간은 다가온다. 여기에서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은 그들의 관계를 규정짓는 은유이다. 섬 안에 갇혀 버린 것처럼 그들은 관계 안에 갇혀 버린 셈이다. 이제 사랑은 자의적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 조건에 의해 강제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은 이별에 대한 욕망, 즉 식어버린 사랑에 결별을 고하고자 하는 욕망의 다름 아니다. 소준문은 영원한 사랑을 부정하고 슬픈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섬이라는 공간에 게이 커플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다음 영화 에서.. 2010. 7. 4.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관대한 가부장이 동성애자와 조우했을 때 최근 한국의 TV드라마들에서는 게이이거나 게이로 가정된 주인공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김수현 작가가 쓴 SBS의 주말특별기획 드라마 와 소설을 원작으로 한 SBS의 수목드라마 이 바로 그렇다. 이제 드라마를 통해 ‘게이’라는 호칭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하고 가슴을 설레게 한다. 나 , , 같은 퀴어 영화들이 몰고 온 신드롬이나 파급력과는 분명 차원이 다르다. TV라는 매체가 지닌 특수성, 즉 접근의 편의성과 다양한 세대의 온 가족을 브라운관 앞에 모아놓는 동시관람 행위 유발의 용이성은 그 게이들이 일상 속 깊숙이 방문할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김수현처럼 영향력 있는 드라마 작가라면 더욱 그러하리라. 더불어 그들의 모습은 더 이상 과도하게 여성스럽거나 성적으로 과잉되어 있.. 2010. 5. 27.
다시 이해하는 차이코프스키 한국에서 동성애자 차이코프스키 받아들이기 유명인에 대한 일화는 그 유명인보다 그런 일화를 제기하는 이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특히 어린이들이 읽는 위인전은 당대 사회가 아이들에게 주입하고 싶은 가치가 순진한 척하는 말투로 뒤덮여있다. 1993년에 출간된 음악춘추사 문고판『차이코프스키』에서는 이 작곡가가 결혼에 실패한 이유를 여성을 바라보는 차이코프스키의 순수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차이코프스키는 평범한 남성들과 달리 여성을 지나치게 이상화해서 결혼생활, 즉 성생활을 할 수 없었는데, 아내였던 밀류코바가 성생활을 밀어붙여서 그가 자살을 시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식이라면 자식을 스무 명이나 낳은 바흐는 여성을 동물로 보아서 그런 것이냐고 반문하고 싶다. (저자가 누구인지 찾아보.. 2010. 5. 26.
멸망에의 욕망, 미시마 유키오 - 『가면의 고백』에 드러난 어느 동성애자의 기록 소설『금각사』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 현대 문학을 이야기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가 중 한명이다. 마치 독자를 녹여버릴 듯 달콤하고 아름답게 달려 나가는 그의 미려한 문장들은 그가 일본문학에서 중요한 작가로 평가받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곤 한다. 작품 전반에 드러난 우익적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미시마 소설의 미학적 완성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아름다운 문장의 힘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의 소설에는 웬만큼 공을 들여서는 쓰기 쉽지 않은 빛나는 문장이 있다. 매번 읽을 때마다 페이지 곳곳에서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이러한 빛나는 문장들은 미시마가 철저한 장인정신에 입각해 작품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 2010. 5. 26.
<밀크Milk>(2008) - 하비밀크의 시간들, 혹은 댄 화이트의 부재한 시간들 ‘카스트로 거리의 시장’으로 불렸던 샌프란시스코 시의원 하비밀크의 일대기는 이미 오래전에 롭 엡스타인 감독의 (1984)이라는 뛰어난 다큐멘터리로 공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적 영상미에 몰두하던 구스 반 산트 감독이 굳이 자신의 행보를 잠시 철회하면서까지 밀크의 삶을 다큐멘터리가 아닌 픽션으로 재구성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는 ‘억압받던 동성애자들이 어떻게 승리를 쟁취했는가’라는 물음 주변을 맴도는 독해로부터 탈주하고자 한다. 즉 억압받는 소수자의 역사를 거시적 관점에서 조명하여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려는 의도의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는 단순히 동성애자 인권 증진의 역사에 중요한 한 지점을 기록물로 남겨 그들만을 위한 .. 2010. 3. 29.
동시대를 전유했으나 넘어서지 못한 동성애 소설 - 앙드레 지드의『코리동』 1924년에 앙드레 지드가 발표한 소설『코리동』은 역사와 예술, 생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방대한 자장 안에서 동성애에 대한 전방위적인 담론을 펼치고 있다. 화자와 ‘코리동’이 나누는 심오하고 지난한 대화와 논쟁을 통해 자신의 소외된 정체성을 긍정하고자 분열될 수밖에 없었을 저자의 치열한 자기 고민과 지적 성실성에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더불어 시대적 한계와 그에 대한 타협이라는 곱지 못한 시선을 받는 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서두에서 코리동은 동성애를 옹호하는 근본적 원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파스칼의 말을 인용해, “자연이 온통 천편일률적이 아니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까 자연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관습이다. 관습이야말로 자연을 속박.. 2010. 3. 29.
하늘을 날아가는 꽃가루처럼 -이효석의 화분- 왜 이효석인가 1930년대의 대표적 작가인 이효석은 우리에게 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무척 친숙하다. 한국의 자연과 향토적 정서를 매우 아름답게 다룬 ‘메밀꽃 필 무렵’은 우리에게 이효석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결코 이 작품이 이효석의 작품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에 대한 기록들을 찾아보면, 이효석이 ‘메밀꽃 필 무렵’에서 엿볼 수 있는 소박한 한국의 아름다움보다는 당시 쏟아져 들어오던 서구 문명의 화려함에 훨씬 경도되어 있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 당시에 그는 클래식 음악에 상당히 조예가 깊었고, 특히 쇼팽을 즐겨 들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피아노와 전축은 그가 생전에 가장 아끼던 보물들이었다고 한다. 또한 그 당시 이효석은 이미 원.. 2010. 3. 2.
오늘은 어제 몫까지 오롯이 덧칠된 자화상 -그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싱글멘』 소설 은 하루 동안 주인공 조지가 겪는 일을 그리고 있다. 시작은 무척 음침하고 결말은 안타깝다. 외부에서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하루이지만 그는 잊혀지지 않는 삶의 순간을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기어코 끌어낸다. 그가 꺼내드는 사고의 파편을 따라가 보자. 1. 이중 사고 지난 '지금'은 모두 과거가 된다. 조만간 그 날이 올 때까지 한 남자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길에 나선다. 특별한 하루가 되리라는 기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조지는 이미 중년. 시간의 굴레를 거스르려는 의지는 아주 가끔 찾아올 뿐이다. 연인과 사별한 뒤에도 여전히 그와 함께 한 집에 머무르는 그에게 하루하루란 그 날 이후로 더해진 하루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자의든 타의든 죽음과 더불어.. 2010. 3. 2.
[내가 추천하는 영화] 시대착오적 자장 안에서 빚어지는 퀴어들의 욕망 -쿠도 칸쿠로 감독의 <한밤 중의 야지 키타> 시대착오적 자장 안에서 빚어지는 퀴어들의 욕망 -쿠도 칸쿠로 감독의 영국의 게이 영화감독인 데릭 저먼의 영화들은 추상적인 게이 감수성의 모범적인 발현으로 전세계 퀴어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왔다. 특히 바로크 시대를 풍미했던 화가 카라바조의 일대기를 다룬 (1986)는 모든 장면을 세트에서 촬영하며 명암이 뚜렷한 카라바조의 회화 세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한 탐미적인 영상을 과시하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전기영화 (1991)는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하는 미니멀한 화면 구성으로 시대적 배경이 모호하게끔 처리하였다. 두 영화 모두 동성애자로 가정된 역사 속의 실존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지만 엄밀한 고증에 기반에 재현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나아가 자동차에 기대어 선 카라바조의 모습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미장.. 2009. 12. 31.
공간의 이름, 이름의 공간 - 성적 소수자 공간의 필요를 역설하다. 뼈를 에는 12월의 어느 날, 처음 만난 파트너를 따라 종로 3가 뒷골목에 있는 어느 전집엘 들어갔다. 숨겨진 듯한 방에 착석, 냉골 속에서도 화색이 도는 주변 분위기를 살피며 메뉴를 고르는데, 눈을 사로잡는 건 사방에 가득한 낙서들. 질박하면서도 살짝 앙증맞던 낙서들의 내용은 대체로 이반 손님들의 ‘나 외로워요’가 대세였다. 낙서를 하나하나 훑으면서 사무치는 외로움(?)에 대한 묘한 동질감을 가지며, ‘한’서린 메시지의 향연에 아마도 그날 밤 나는 막걸리 네 병을 내리 비웠던가 보다. (물론 목적은 다른 데 있었지만) 공간과 매체들을 접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한 이미지와 흔적들을 본다. ‘우리 이반이에요.’ 라는 말은 굳이 입밖에 올리지 않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보는 것들. 이런 걸 두고 스.. 2009. 12. 30.
커밍아웃의 강요와 동성애혐오의 포용으로 탄생하는 신가족주의 -영화 를 보고 게이 커뮤니티의 하위문화와 장르 영화의 보편화 된 관습을 절묘하게 직조해내는 스페인 퀴어 영화의 솜씨는 일품이다. 나아가 이 영화들은 게이 커뮤니티 내부의 다양한 차이들을 짚어낼 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뜨거운 사회적 이슈들을 수렴하며 정형화된 동성애 재현으로부터 끊임없이 탈주하고 있다. 예로, 는 게이전용호텔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는 요리사들의 파업을 이야기의 한 축으로 가져오면서 상업화된 게이문화의 일면을 폭로하고 있고, 베를린영화제 초청작인 은 ‘베어’ 커뮤니티의 하위문화가 제공하는 볼거리를 배경으로 에이즈에 감염된 게이의 입양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이 밖에서 불법체류 중인 불가리아 게이와 스페인 게이의 사랑을 다룬 는 게이 커뮤니티 내부의 계급차이와 갈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 2009. 10. 21.
소수자 감수성의 미적 실험: 오인환 개인전 ‘TRAnS’ 1. 시작에 앞서 질문, ‘우리나라에 성소수자 미술가는 누가 있을까?’ 한때 미술을 공부했던 나에겐 누군가를 만나 말을 트게 되면 그들로부터 피할 수 없었던 질문이 하나 있어왔다. ‘한국에 성소수자 미술가는 누가 있나요?’ 이 때문에 나는 학교 모임에 나갈 때나 애인이랑 미술관엘 갈 때, 심지어 번개자리에서 대화가 필요할 때 까지도 항시 한국의 성소수자 미술가를 머릿속에 한두 명쯤은 새겨둬야 했다. 그런데 누가 있지? 누구나 한번쯤은 미술종사자 중에 성소수자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을 가져봤을 것이다. 이유인 즉, 창작을 하는 분야이니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섬세하고 독특한 감수성과 아이디어를 가지지 않겠냐는 것이다. 최근에는 미술계보다 좀 더 대중적인 디자인 분야로 판타지 비중이 옮겨간 것 같기도 하다. 이유.. 2009.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