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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문화읽기171

근성과 에너지로 호흡하는 작가 키스해링 80년대 레이건정부가 주도했던 자유주의 성장정책은 대중문화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헐리웃에서는 , , 등 영웅을 신화화하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대량생산되었고, 저항적인 펑크문화는 MTV의 등장과 함께 급속히 팽창한 팝시장에 밀려나게 되었다. 팝문화의 팽창으로 세계 문화시장을 장악하게 된 미국. 패권을 유지하려는 열망과 함께 미국 정부는 보수적인 정책노선을 내세웠다. 확대된 시장정책과 보수적 정치성향은 월남전을 전후로 일어났던 70년대 저항의 분위기를 소비시장에 편입시켰다. 80년대를 휩쓴 팝의 용광로 속에서 저항적 대중들은 개인적인 관심사의 영역으로 위축되었고, 곧 ‘착한 시민’의 모습으로 사회에 순응했다. 하지만 동시대 미국사회의 주변부에서는 새로운 현상들이 목격되었다. 특히 문화·예술의 장에서 뉴욕의.. 2010. 8. 5.
‘앤디 워홀’, 그의 이름 1. ‘지겨운 나른함, 질리게 봐온 창백함.’ 1949년, 체코 이민 2세 출신의 상업그래픽 작가가 뉴욕에 첫 발을 내딛었다. 뉴욕, 그에게 그곳은 울트라 스펙터클의 신천지였다. 스케일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도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쏟아지는 광고와 온갖 상품들, 하늘을 찌르는 빌딩숲 사이로 사람과 자본이 넘실대는 풍경들. 모든 것이 사건과 뉴스로 소비되고, 사람들마다 ‘유행’이라는 세련됨으로 무장한 도시. 대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에 입성하여 그가 처음으로 시작한 작업은 광고 일러스트였다. 그는 종종 흐드러진 코르셋에 온갖 장신구가 치렁치렁한 여성 캐릭터를 선전용 전단에 그려 넣으며 허리춤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더러 여성의 제스처와 표정을 과잉되게 연출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그려 넣기도 했다. ‘나.. 2010. 7. 4.
어느 염세주의자의 낭만적 사랑 - 소준문 감독의 <REC> 게이 옴니버스 영화 중 소준문 감독의 데뷔작 은 서울을 떠나 보길도라는 섬에 정착한 게이 커플의 갈등을 다룬다. 그들은 그곳에서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서 2년간 함께 살아왔으나, 커플 중 한 명이 그 섬을 떠나고 싶어 하자 이별의 순간은 다가온다. 여기에서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은 그들의 관계를 규정짓는 은유이다. 섬 안에 갇혀 버린 것처럼 그들은 관계 안에 갇혀 버린 셈이다. 이제 사랑은 자의적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 조건에 의해 강제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은 이별에 대한 욕망, 즉 식어버린 사랑에 결별을 고하고자 하는 욕망의 다름 아니다. 소준문은 영원한 사랑을 부정하고 슬픈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섬이라는 공간에 게이 커플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다음 영화 에서.. 2010. 7. 4.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관대한 가부장이 동성애자와 조우했을 때 최근 한국의 TV드라마들에서는 게이이거나 게이로 가정된 주인공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김수현 작가가 쓴 SBS의 주말특별기획 드라마 와 소설을 원작으로 한 SBS의 수목드라마 이 바로 그렇다. 이제 드라마를 통해 ‘게이’라는 호칭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하고 가슴을 설레게 한다. 나 , , 같은 퀴어 영화들이 몰고 온 신드롬이나 파급력과는 분명 차원이 다르다. TV라는 매체가 지닌 특수성, 즉 접근의 편의성과 다양한 세대의 온 가족을 브라운관 앞에 모아놓는 동시관람 행위 유발의 용이성은 그 게이들이 일상 속 깊숙이 방문할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김수현처럼 영향력 있는 드라마 작가라면 더욱 그러하리라. 더불어 그들의 모습은 더 이상 과도하게 여성스럽거나 성적으로 과잉되어 있.. 2010. 5. 27.
다시 이해하는 차이코프스키 한국에서 동성애자 차이코프스키 받아들이기 유명인에 대한 일화는 그 유명인보다 그런 일화를 제기하는 이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특히 어린이들이 읽는 위인전은 당대 사회가 아이들에게 주입하고 싶은 가치가 순진한 척하는 말투로 뒤덮여있다. 1993년에 출간된 음악춘추사 문고판『차이코프스키』에서는 이 작곡가가 결혼에 실패한 이유를 여성을 바라보는 차이코프스키의 순수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차이코프스키는 평범한 남성들과 달리 여성을 지나치게 이상화해서 결혼생활, 즉 성생활을 할 수 없었는데, 아내였던 밀류코바가 성생활을 밀어붙여서 그가 자살을 시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식이라면 자식을 스무 명이나 낳은 바흐는 여성을 동물로 보아서 그런 것이냐고 반문하고 싶다. (저자가 누구인지 찾아보.. 2010. 5. 26.
멸망에의 욕망, 미시마 유키오 - 『가면의 고백』에 드러난 어느 동성애자의 기록 소설『금각사』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 현대 문학을 이야기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가 중 한명이다. 마치 독자를 녹여버릴 듯 달콤하고 아름답게 달려 나가는 그의 미려한 문장들은 그가 일본문학에서 중요한 작가로 평가받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곤 한다. 작품 전반에 드러난 우익적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미시마 소설의 미학적 완성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아름다운 문장의 힘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의 소설에는 웬만큼 공을 들여서는 쓰기 쉽지 않은 빛나는 문장이 있다. 매번 읽을 때마다 페이지 곳곳에서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이러한 빛나는 문장들은 미시마가 철저한 장인정신에 입각해 작품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 2010. 5. 26.
<밀크Milk>(2008) - 하비밀크의 시간들, 혹은 댄 화이트의 부재한 시간들 ‘카스트로 거리의 시장’으로 불렸던 샌프란시스코 시의원 하비밀크의 일대기는 이미 오래전에 롭 엡스타인 감독의 (1984)이라는 뛰어난 다큐멘터리로 공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적 영상미에 몰두하던 구스 반 산트 감독이 굳이 자신의 행보를 잠시 철회하면서까지 밀크의 삶을 다큐멘터리가 아닌 픽션으로 재구성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는 ‘억압받던 동성애자들이 어떻게 승리를 쟁취했는가’라는 물음 주변을 맴도는 독해로부터 탈주하고자 한다. 즉 억압받는 소수자의 역사를 거시적 관점에서 조명하여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려는 의도의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는 단순히 동성애자 인권 증진의 역사에 중요한 한 지점을 기록물로 남겨 그들만을 위한 .. 2010. 3. 29.
동시대를 전유했으나 넘어서지 못한 동성애 소설 - 앙드레 지드의『코리동』 1924년에 앙드레 지드가 발표한 소설『코리동』은 역사와 예술, 생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방대한 자장 안에서 동성애에 대한 전방위적인 담론을 펼치고 있다. 화자와 ‘코리동’이 나누는 심오하고 지난한 대화와 논쟁을 통해 자신의 소외된 정체성을 긍정하고자 분열될 수밖에 없었을 저자의 치열한 자기 고민과 지적 성실성에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더불어 시대적 한계와 그에 대한 타협이라는 곱지 못한 시선을 받는 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서두에서 코리동은 동성애를 옹호하는 근본적 원리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파스칼의 말을 인용해, “자연이 온통 천편일률적이 아니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까 자연을 천편일률적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관습이다. 관습이야말로 자연을 속박.. 2010. 3. 29.
하늘을 날아가는 꽃가루처럼 -이효석의 화분- 왜 이효석인가 1930년대의 대표적 작가인 이효석은 우리에게 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무척 친숙하다. 한국의 자연과 향토적 정서를 매우 아름답게 다룬 ‘메밀꽃 필 무렵’은 우리에게 이효석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결코 이 작품이 이효석의 작품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에 대한 기록들을 찾아보면, 이효석이 ‘메밀꽃 필 무렵’에서 엿볼 수 있는 소박한 한국의 아름다움보다는 당시 쏟아져 들어오던 서구 문명의 화려함에 훨씬 경도되어 있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 당시에 그는 클래식 음악에 상당히 조예가 깊었고, 특히 쇼팽을 즐겨 들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피아노와 전축은 그가 생전에 가장 아끼던 보물들이었다고 한다. 또한 그 당시 이효석은 이미 원.. 2010. 3. 2.
오늘은 어제 몫까지 오롯이 덧칠된 자화상 -그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싱글멘』 소설 은 하루 동안 주인공 조지가 겪는 일을 그리고 있다. 시작은 무척 음침하고 결말은 안타깝다. 외부에서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하루이지만 그는 잊혀지지 않는 삶의 순간을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기어코 끌어낸다. 그가 꺼내드는 사고의 파편을 따라가 보자. 1. 이중 사고 지난 '지금'은 모두 과거가 된다. 조만간 그 날이 올 때까지 한 남자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길에 나선다. 특별한 하루가 되리라는 기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조지는 이미 중년. 시간의 굴레를 거스르려는 의지는 아주 가끔 찾아올 뿐이다. 연인과 사별한 뒤에도 여전히 그와 함께 한 집에 머무르는 그에게 하루하루란 그 날 이후로 더해진 하루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자의든 타의든 죽음과 더불어.. 2010. 3. 2.
[내가 추천하는 영화] 시대착오적 자장 안에서 빚어지는 퀴어들의 욕망 -쿠도 칸쿠로 감독의 <한밤 중의 야지 키타> 시대착오적 자장 안에서 빚어지는 퀴어들의 욕망 -쿠도 칸쿠로 감독의 영국의 게이 영화감독인 데릭 저먼의 영화들은 추상적인 게이 감수성의 모범적인 발현으로 전세계 퀴어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왔다. 특히 바로크 시대를 풍미했던 화가 카라바조의 일대기를 다룬 (1986)는 모든 장면을 세트에서 촬영하며 명암이 뚜렷한 카라바조의 회화 세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한 탐미적인 영상을 과시하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전기영화 (1991)는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하는 미니멀한 화면 구성으로 시대적 배경이 모호하게끔 처리하였다. 두 영화 모두 동성애자로 가정된 역사 속의 실존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지만 엄밀한 고증에 기반에 재현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나아가 자동차에 기대어 선 카라바조의 모습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미장.. 2009. 12. 31.
공간의 이름, 이름의 공간 - 성적 소수자 공간의 필요를 역설하다. 뼈를 에는 12월의 어느 날, 처음 만난 파트너를 따라 종로 3가 뒷골목에 있는 어느 전집엘 들어갔다. 숨겨진 듯한 방에 착석, 냉골 속에서도 화색이 도는 주변 분위기를 살피며 메뉴를 고르는데, 눈을 사로잡는 건 사방에 가득한 낙서들. 질박하면서도 살짝 앙증맞던 낙서들의 내용은 대체로 이반 손님들의 ‘나 외로워요’가 대세였다. 낙서를 하나하나 훑으면서 사무치는 외로움(?)에 대한 묘한 동질감을 가지며, ‘한’서린 메시지의 향연에 아마도 그날 밤 나는 막걸리 네 병을 내리 비웠던가 보다. (물론 목적은 다른 데 있었지만) 공간과 매체들을 접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한 이미지와 흔적들을 본다. ‘우리 이반이에요.’ 라는 말은 굳이 입밖에 올리지 않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보는 것들. 이런 걸 두고 스.. 2009. 12. 30.
커밍아웃의 강요와 동성애혐오의 포용으로 탄생하는 신가족주의 -영화 를 보고 게이 커뮤니티의 하위문화와 장르 영화의 보편화 된 관습을 절묘하게 직조해내는 스페인 퀴어 영화의 솜씨는 일품이다. 나아가 이 영화들은 게이 커뮤니티 내부의 다양한 차이들을 짚어낼 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뜨거운 사회적 이슈들을 수렴하며 정형화된 동성애 재현으로부터 끊임없이 탈주하고 있다. 예로, 는 게이전용호텔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는 요리사들의 파업을 이야기의 한 축으로 가져오면서 상업화된 게이문화의 일면을 폭로하고 있고, 베를린영화제 초청작인 은 ‘베어’ 커뮤니티의 하위문화가 제공하는 볼거리를 배경으로 에이즈에 감염된 게이의 입양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이 밖에서 불법체류 중인 불가리아 게이와 스페인 게이의 사랑을 다룬 는 게이 커뮤니티 내부의 계급차이와 갈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 2009. 10. 21.
소수자 감수성의 미적 실험: 오인환 개인전 ‘TRAnS’ 1. 시작에 앞서 질문, ‘우리나라에 성소수자 미술가는 누가 있을까?’ 한때 미술을 공부했던 나에겐 누군가를 만나 말을 트게 되면 그들로부터 피할 수 없었던 질문이 하나 있어왔다. ‘한국에 성소수자 미술가는 누가 있나요?’ 이 때문에 나는 학교 모임에 나갈 때나 애인이랑 미술관엘 갈 때, 심지어 번개자리에서 대화가 필요할 때 까지도 항시 한국의 성소수자 미술가를 머릿속에 한두 명쯤은 새겨둬야 했다. 그런데 누가 있지? 누구나 한번쯤은 미술종사자 중에 성소수자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을 가져봤을 것이다. 이유인 즉, 창작을 하는 분야이니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섬세하고 독특한 감수성과 아이디어를 가지지 않겠냐는 것이다. 최근에는 미술계보다 좀 더 대중적인 디자인 분야로 판타지 비중이 옮겨간 것 같기도 하다. 이유.. 2009. 8. 7.
호모필리아homophilia의 불온한 상상력을 넘어 - 와 가 욕망하는 것들 꽃미남 게이들의 낭만적 사랑으로 가득 한 게이영화들이 전 세계의 퀴어영화제를 돌며 핑크 산업의 첨병 노릇을 하고 있다. 이런 영화들을 관람하는 게이들은 전 지구적인 문화상품을 소비하며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는 동시대 게이로서의 동질감을 형성한다. 그리고 운 좋게 영화제라는 제한적 상영을 벗어나 정식 개봉을 통해 일반 관객들과 조우할 수 있는 게이영화는 여성관객들의 시각적 즐거움에 복무하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의 엄격한 잣대 하에서 게이들의 현실을 외면한 꽃미남들의 상품화에 대해 반감을 갖기도 한다. 따라서 게이영화를 둘러싼 논쟁의 초점은 늘 얼마나 사실적으로 게이들의 삶을 묘사했는가의 여부이다. 그곳에는 남성 동성애자라는 집단적 정체성의 취사선택과 그에 대한 응시만이 .. 2009. 7. 6.
LGBT 투쟁의 역사 - 릴리언 패더먼 인터뷰 인터뷰 : 리타 맥러플린 Socialist Review 2009년 2월 출처 : http://www.socialistreview.org.uk/article.php?articlenumber=10710 1950년대 미국의 레즈비언들은 끔찍한 공식적 차별을 받았다. LGBT 역사가 릴리언 패더먼은 리타 맥러플린에게 상황이 극적으로 변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더 많은 것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1950년대에 노동계급 레즈비언으로서 커밍아웃하는 것은 어떤 일이었습니까? 1950년대는 아마도 미국에서 레즈비언으로 산다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였을 겁니다. 나는 오늘날 레즈비언들에게 서구 세계가 어떤 곳인지 보고 있는데 이건 정말 다른 세상이지요. 물론 젊은 레즈비언들도 가족들과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여.. 2009. 7. 6.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인권영화제에 다녀와서 내가 청계광장에 들어섰을 때는 다행히 광장이 닫혀 있지 않은 상태였다. 개막식 바로 이틀 전, 불법집회로의 변질 가능성을 이유로 이명박 정부가 영화제 자체를 불허하였기 때문에 나는 현장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시청 앞 광장이 앞서 그랬던 것처럼, 전경버스가 빙 둘러싸고 있는 영화제 현장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가볍지 않은 발걸음을 재촉했던 것이다. 청계광장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이 사회의 총체적인 불합리에 대한 막연한 분노와 불안감, 답답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고민했던 것 같다. 마땅히 시민들에게 열려있어야 할 시민들의 공간이 권력의 필요에 의해 차압당하는 어이없는 현실 앞에서 힘없는 개인은 그것을 그저 목도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무기력은 .. 2009. 7. 6.
영화 <엑스맨> 시리즈를 돌아보면서 오랜만에 달려간 영화관에서 내가 보게된 건 이었다. (원제목은 오글거리는데다가 한영전환이 귀찮으므로 이하 엑스맨으로 부르겠다.) 같이 갔던 사람에게 선택권을 주긴 했지만, 내심 난 엑스맨을 기대했다. 다른 재미있는 영화들도 많다던데, 굳이 엑스맨을 기대한 건 이유가 있다. 어떤 기대감인지, 엑스맨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알지 못할 것이다. 뭐, 충분히 모를 수 있을 게다. 눈창을 허옇게 뒤집더니 웬 폭풍이 몰아친다든지 선글라스를 벗더니 시뻘건 파괴광선이 눈에서 뿜어져 나온다든지, 이런 SF 환타지 짬뽕국물 같은 영화 시리즈에 관심과 기대를 걸 사람이 이런 장르 매니아 말고는 잘 없는 탓이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들의 이야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 보고 지나치고 말거나 할 뿐이다. 적어.. 2009. 6. 1.
연애, 그 달콤 쌉싸래한 인생살이 - 방현희, 『바빌론 특급우편』,「연애의 재발견」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외쳤던 영화를 기억하는가. 봄날이 가듯, 연애의 봄도 사랑의 봄도 가기 마련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했던 이 대사는 사랑의 진리 같은 대사라고 생각한다.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을 외치는 로맨스 드라마들보다 사랑을 콕 집어 말해주던 그 대사는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꼭 공감할 말일 것이다. 방현희의 소설「연애의 재발견」은 이런 연애에 대한 이야기다. 연애의 시작부터 끝까지 연애라는 게 그렇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연애가 시작되는 것도 아니며, 두 사람이 설령 사랑하여 연애가 시작됐다 해도 한 사람이 마음이 식어버리면 그냥 그 상태에서 끝나거나 지지부진하게 이어가다 안 좋은 결말을 맺게.. 2009. 4. 28.
다큐 <레즈비언 "정치"도전기>를 보고 : 감동적인 용기와 열정, 길을 묻다 최현숙씨가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 하고 총선에 출마한 것은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더욱이 진보 정당의 후보로 나섰다는 것은 단지 동성애자(성소수자)의 공직 선거 출마라는 화젯거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동성애자 운동의 전략에 대한 중요한 토론 지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큐 를 보고 나는 호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큐는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무엇보다 먼저 최현숙씨와 선거본부 구성원(이하 선본원)들의 용기와 열정, 진지한 고민과 노력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감독들은 따듯한 지지의 시선으로 최현숙씨와 그녀의 도전에 함께한 이들을 바라본다. 아니, 처음부터 다큐는 그들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참여, 이해와 공감이 다큐의 바탕이었다. 덕분에 선거 과정에서의 고민과 어려움, 기쁨과.. 2009.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