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23. 데리다 - 그리워하며, 환대를
長篇小說 金 飛 23. 데리다 - 그리워하며, 환대를 “여보세요? 아, 아닙니다. 잘못 거셨어요. 아니에요, 전화 잘못 거신 것 같습니다.” “사장님 계십니까?” “예, 무슨 일이신데요?” “여기 가게를 내놓았다고 해서 찾아 왔는데요.” “아닌데요, 저희는 가게 내놓은 적 없습니다.” “사장님이세요? 아닌데… 건물 주인에게 아직 이야기를 못 들으신 건가요? 아, 아닌가? 박 사장이 아직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건가? 이거 미안합니다. 나중에 확인을 하고 다시 오지요. 실례했습니다.” “뭐예요, 가게 내놨어요?” “아니, 아니야.” “근데 저 사람은 뭐야?” “모르겠어. 웬일이야, 내가 한 동안 모이지 말자고 문자 보냈는데, 못 받았어?” “오지 말라고 하면 오지 말아야 하는 곳인 거야, 여기? 치사하게 왜 ..
2015. 5. 21.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22. 산 - 사람들, 오독(誤讀)하는
長篇小說 金 飛 21. 산 - 사람들, 오독(誤讀)하는 나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읽는다’는 행위는 인간에게 제일 먼저 필요한 도구이고 생존의 방식일 테지만, 모든 걸 다 안다고 말할 때, 이제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다고 확신할 때, 바로 그때 이전까지 읽었던 그 모든 것들은 틀린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소통은 혐오스럽다. 이해는 혐오스럽다. 안다는 건 혐오스럽고, 알겠다고 말하는 것도, 알아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알고나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도, 모조리 혐오스럽다. 이해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그 행위들은 알 수 없어야 당연하고, 몰라야 당연하고, 그걸 두고 괴로워하거나 자학하고 자멸하는 일은 다시 잘못 읽는 행위일 뿐이다. 한 쪽 다리의 인대가 망가져 평생 다리를 절며 살아야할지도 모른다는..
2015. 5. 10.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16. 데리다 - 디페랑스, 세상에 없는
長篇小說 金 飛 16. 데리다 - 디페랑스, 세상에 없는 "뭐야, 이 분위기? 다들 왜 이래, 재미없게?" "조용히 있어, 너는. 그래도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 평소처럼 끼 떨고 그러는 모습 보이고 싶냐? 오늘은 좀 점잖게 잠자코 있어." "어머머, 이 언니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땍땍하게 굴어? 그런다고 언니의 기갈이 감춰질 수 있을 것 같애? 그런다고 감춰질 거였으면 언니가 이 바닥에 이렇게 오픈해서 나올 수 있었겠어? 일반들 사이에서 포비아인 척하며 살지. 형 외모만 보면 완전 성질 더러운 포비아같애, 그거 알아?" "이게 정말? 오늘은 쫌 그만하자, 응? 새로 오셨잖아, 새로! 그러니까 우리 모임을 위해서도 그런 모습을 보이면 좀 그렇잖니, 안 그러냐?" "아야야, 왜 발을 밟아? 씨, 우리 원래 이..
2015. 3. 22.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 15. 새 - 달라지는 것들, 사랑하면
長篇小說 金 飛 14. 새 - 달라지는 것들, 사랑하면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나면, 잠시 세상이 정지한다. 바쁘게 머릿속을 유영하던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증발한다. 오직 사랑한다는 그의 목소리 하나만, 등대처럼 새빨갛게 거기 섰다. 언제나 그건 나에게서 멸종된 언어였다. 가족이나 형제, 혹은 친구들의 이름 뒤에 붙이는 사랑 따위도 꺼내어본 적 없어, 내가 아는 언어 속에는 그런 말이 없었다. TV 속에서, 책 속에서, 사랑을 보고 읽었을 때, 나는 전시물 앞에 선 것처럼 멀찌감치 떨어졌다. 한 번은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에게 안기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거기 유리벽 안에만 있던 사랑이, 아무리해도 가까워질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던 사랑이 하나의 몸으로 마침내 나에게 안긴 것 같았기 때문에. 물 ..
2015. 3. 15.
우리의 우울에 입맞춤 |13. 새 - 구해줘, 겁이 나
長篇小說 金 飛 13. 새 - 구해줘, 겁이 나 사람에게는, 각자 주어진 몫이 있다고 믿었다. 삶이라는 시간이 저마다의 길을 따라 흘러가는 일이라면, 어떤 골을 만나 휘어지고 고였다가 또 어디로 흘러가게 되는 그런 게 삶이라면, 내 몫의 삶에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너비와 다른 방향의 길이 있을 거라고. 그러나 시간의 물살에 나를 내맡겨 흘러가다가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높고 가파른 벽에 부딪히면서, 나는 겁이 났다. 그 벽의 크기와, 질감과, 심지어 내가 그 벽에 왜 부딪혔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게 뭐지, 나는 버둥거리는 게 다였다. 제자리를 뱅뱅 돌며 허우적거리는 나는, 벽 아래 내내 그러고만 있는 힘없는 아이였다. 그런 나에게 내 스스로 손을 내밀었던 것은, 아무도 나를 구해줄 수..
2015. 3. 4.